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미분양 급증과 주택시장 안정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이하는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활기에 가득 차 있을 계절이건만 최근 국내외 경기는 물론이고 부동산시장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지방에서 시작된 미분양 증가 현상은 이미 극에 달해 공식 발표된 물량만도 12만가구를 넘어서고 있다. 브랜드가치나 영업상의 부작용을 우려해 공개를 기피하는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미분양 규모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된다. 최근에는 그 범위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어 부동산시장이 모진 한파에서 조기에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현상이 초래된 원인을 두고 정책당국은 과잉공급에 따른 후유증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정책변화가 부동산시장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에 떠밀려 도입된 분양가상한제의 도입과 시행, 반시장적인 정책시행의 결과는 주택건설업체로 하여금 밀어내기 물량을 쏟아낼 수밖에 없도록 내몬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위기와 원자재가 급상승 등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더라도 이전보다 분양가는 인상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앞으로 출시되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이 그동안 분양시기를 저울질해온 상당수 수요층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분양 침체로 가뜩이나 경영부담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주택건설업체로서는 주택사업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공급계획의 철회나 대폭 축소도 검토하고 있어 향후 수급상황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렇게 될 경우 올해 새 정부가 추진하는 충분한 공급확대를 통한 주택가격 안정은 그 출발부터 삐걱거릴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대다수 국민들은 새 정부 들어 규제가 완화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거래량이 동반되지 않는 현재의 가격수준을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삼고 있는 새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참여정부와 다른 부동산정책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즉 기존의 규제강화로 형성된 기형적 가격안정에 부동산정책의 기조를 얹혀놓겠다는 것이다. 설사 이렇게 되더라도 ‘가격안정’ 아니 ‘가격고정’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과도한 부동산규제의 완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만 잔뜩 심어줬을 뿐 구체적인 정책의 액션플랜은 어디에도 없는 꼴이다. 어쩌면 ‘부동산시장의 안정’이라는 표현이 가진 의미도 모호하기만 하다. 현재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전제로’라는 단서를 달면서 주춤거리는 새 정부의 정책 추진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새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가격변동이 두려워 중ㆍ장기적인 부동산정책의 시기와 방향을 놓친다면 국내 부동산시장은 규제의 주체만 바뀌었을 뿐 이전과 다를 것 없는 규제의 잣대 속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철학이 없는 정치는 피곤하기 짝이 없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국민들은 불편과 손해, 고단함을 덤터기로 쓰게 된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길을 대다수 국민에게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부동산시장의 안정은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 완화의 큰 틀에서 새롭게 설정돼야 한다. 시장상황의 변화에 맞게 기준도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주택시장이나 국민들이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애매하게 포장하지 말고 진실한 정책방향을 제대로 소개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저 모호함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부동산시장이나 국민을 두 번 힘들게 만드는 꼴이다. 부동산시장의 안정은 가격 안정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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