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차기 정부, 이것만은 고치자] <3> 경제 발목 잡는 기업정책

정권 바뀔 때마다 규제 남발… 기업 성장 백년대계 세워라<br>출총제·중기 고유업종 등 강화→폐지→재규제 반복<br>안정적 경영 계획 힘들고 규제 순응 비용만 눈덩이




"전두환부터 MB까지 다 똑같다" 직격탄
[차기 정부, 이것만은 고치자] 경제 발목 잡는 기업정책정권 바뀔 때마다 규제 남발… 기업 성장 백년대계 세워라출총제·중기 고유업종 등 강화→폐지→재규제 반복안정적 경영 계획 힘들고 규제 순응 비용만 눈덩이

김상용기자 kimi@sed.co.kr
































"이건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1990년 5월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그룹의 비업무용 토지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하자 득달같이 노태우 대통령을 찾아가 이렇게 항의했다. 정부가 강매하다시피 땅을 기업에 넘긴 뒤 입장을 바꿔 다시 비업무용 토지를 규제하자 신 회장은 억울한 심정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남발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자유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차기 대권주자들도 조변석개(朝變夕改) 식의 정책마인드는 달라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 정부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맹목적 규제'가 있었고 이번 대선 역시 '경제민주화'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부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대기업 정책 로드맵이 우리 경제ㆍ산업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대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와 부침이 심한 케이스"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맹목적 규제보다 기업이 참고하고 따를 수 있는 '100년 기업정책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고 보자', 중장기 비전 없는 기업 정책=역대 정부의 주요 대기업 정책을 살펴보면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한제, 금산분리, 일감 몰아주기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각 정권의 정책은 계속 달라졌고 정책의 변덕은 기업에 '정치 리스크'라는 비용 요인으로 작용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후 5년마다 기업정책기조가 크게 달라져 기업이 안정적인 경영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면서 "경제민주화가 쟁점으로 떠오른 올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 리스크에 대한 기업의 부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고 밝혔다.

역대 정권의 기업정책을 돌아보면 말 그대로 변덕이 죽 끓 듯했다. 출총제만 하더라도 규제 도입 강화, 규제 폐지, 재규제 및 규제 폐지 등을 반복했다. 지배구조 선진화의 모범인양 정부가 선전하는 지주회사 규제도 예외는 아니다. 1986년에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지주회사 설립 자체를 금지했다. 1999년에는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지주회사 전환 장려 및 강요 정책으로 탈바꿈됐다.

1979년 도입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는 명맥을 이어오다 2006년 노무현 정부하에서 폐지됐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 정책의 대명사인 공정거래법의 경우 1980년 도입된 이래 정권이 바뀔 때다 규제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누더기로 전락했다.


현 정치권이 그토록 싫어하는 순환출자도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생긴 것이다. 1972년 정부는 '기업공개 촉진법'을 통해 경제 성장의 과실을 국민과 공유하자면서 대주주의 지분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도록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오너들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해 차명계좌를 만드는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또 1975년에는 공개명령제도를 신설해 대기업 주식 매각을 강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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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10% 이상 지분취득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 유치를 목적으로 이를 폐지해 경영권 위협에 노출됐다"며 "결국 대기업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현재의 순환출자 형태의 지배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가 바뀔 때마다 기업의 규제순응비용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삼성전자 정도의 기업을 키우는 비용이라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비전 없이 반복되는 맹목적 규제=지금도 정부의 규제가 맹목적이기는 과거와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 내세우는 경제민주화 관련 세부 항목이 무려 30여 종류에 이른다. 범위도 순환출자 금지에서부터 지주회사 요건 강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이익 보장, 내부 감시로 민주적 경영 실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배임죄 특례신설 등 기업을 A부터 Z까지 옥죄는 모양새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치권에서 말하는 재벌개혁이나 부자증세는 '로빈후드 프로젝트' 같은 의미가 있다"고 비판했다.

권력의 힘인 맹목적 규제를 통해 재벌을 재단하는 것은 금산분리 강화에서 대표적으로 읽을 수 있다. 금산분리 2금융권 확대, 중간 금융지주회사 도입 등이 골자인데 이것은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법안이다.

신 교수는 "경제적 승자의 지위나 재산소득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권력의 힘으로 재조정하거나 세금을 통해 빼앗는 것은 정의롭다는 생각"이 이 같은 맹목적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논의는 관치경제ㆍ관치금융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결국 경제와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정책, 100년 대계 필요할 때=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재계가 규제 완화를 요구할 정도로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미국 제조업계 이익단체인 '생산성과 혁신을 위한 제조업 연맹'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규제 한 건을 이행하는 데 평균 1억달러가 소요되며 연간 2,000억~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한 해 평균 36개의 규제 정책을 내놓았다. 한국의 규제 도입 건수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수치이지만 미국 재계에서는 이마저도 버겁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올해 대선에 출마할 후보자들이 새로운 규제 정책으로 대기업과 재계를 압박하기보다는 경제계의 목소리를 듣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규제 하나로 발생되는 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미국보다 펀더멘털이 약한 한국 경제에 규제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선거를 앞두고 선동적인 정책과 구호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투자 의욕을 흔드는지도 함께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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