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사람]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해외 유명 브랜드 지속적 M&A통해 글로벌 악기시장 평정"



"해외 유명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글로벌 악기시장을 평정할 것입니다. 삼익악기가 세계적 악기회사의 반열에 올라 문화산업에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종섭(63·사진) 삼익악기 회장의 서울 논현동 집무실에는 한쪽 벽면 전체를 덮고 있는 큼지막한 세계 지도가 걸려 있다. 일찍부터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꿈을 펼쳐보겠다고 결심했다는 김 회장은 "20년 넘게 틈만 나면 세계지도를 보며 글로벌 경영의 꿈을 키워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꿈은 이미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이달 중순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2010 상하이 국제악기박람회'의 한 장면. 김 회장이 박람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하이 빅보스(Hi, big boss)"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계 유수의 악기회사 관계자들이 김 회장에게 농담처럼 건넨 이 말 한마디에는 달라진 그의 무게와 어느새 훌쩍 커버린 한국 악기업계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美·유럽등 기술·역사 갖춘 회사들
전통만 강조하다 잇달아 경영실패
지금이 해외영토 확장 절호의 기회 명품 악기업체 스타인웨이 인수로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 톡톡히봐
中서 야마하와 정면 승부 펼칠 것
■마음을 사로잡는 M&A 김 회장은 "최근 세계 악기시장은 미국ㆍ유럽 등 기술력과 오랜 역사를 갖춘 회사가 전통만 강조하다 경영에 실패해 속속 쓰러지고 있다"며 "위기이자 기회인 지금이야말로 해외영토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삼익악기가 세계 악기시장에 본격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지난 3월 미국의 명품 악기업체인 스타인웨이(Steinway)의 지분 31.8%를 인수해 단숨에 최대주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타인웨이는 그랜드피아노 가격만 한 대에 3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악기업체다. 뉴욕 카네기홀이나 스타인웨이홀ㆍ예술의전당 등 세계적인 유명 공연장에는 어김없이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김 회장은 "평소 스타인웨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피아노를 납품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며 "이제 스타인웨이의 회장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악기회사인 스타인웨이의 시가총액이 2억달러(약 2,300억원)에 불과하지만 세계적 음악가들을 모두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문화계에 끼치는 파급력은 대단하다"고 나름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아직도 경쟁업체의 지분을 취득하거나 M&A에 나선다고 하면 기업사냥꾼이라는 말을 떠올릴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건설회사 스패코를 시작으로 전략적 M&A를 통해 꾸준히 사업영역을 확장해온 김 회장의 시각은 다르다. 지난 2002년 독일 벡스타인, 2008년 독일 자일러를 잇달아 인수한 그에게 인수과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전략적 협력자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김 회장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악기업계 주요 인물을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힘들면 같이하자'는 말을 하곤 했다"며 "그러고 나니 진짜 위기가 찾아왔을 때 기꺼이 자금을 투자해 지분을 소유하겠다고 하면 이를 마다하는 기업이 없더라"고 나름의 노하우를 전했다.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스타인웨이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를 맞아 매출이 급감하고 은행으로부터 대출 상환 압박에 시달렸던 스타인웨이 경영진은 평소 농담처럼 전해졌던 김 회장의 제안을 떠올리고 지분 취득을 먼저 제안해왔다. 김 회장은 "어느날 스타인웨이로부터 지분 인수를 제안받고 기꺼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주식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며 "당시 외부 도움이 절실했던 스타인웨이 입장에선 경영난의 숨통을 트이게 됐다"고 전했다. 삼익악기 입장에서도 스타인웨이와 한 배를 타게 된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리게 됐으니 삼익악기의 지분 투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 게임'이었던 셈이다. 그는 "경영인에게 항상 위기는 곧 기회로 받아들여진다"며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준다면 지분인수나 M&A 과정도 무리 없이 성공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꿈은 이제 삼익악기를 지구촌 어디에 사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명실상부한 고급 브랜드로 키워내는 것이다. 김 회장은 "삼익악기는 이미 스타인웨이 지분 획득의 효과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며 "최근 스타인웨이 기술팀이 인도네시아공장을 직접 찾아 제조공정을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조언하는 등 기술수준 향상 및 스타인웨이의 관계사라는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내년께 피아노의 판매가격을 15% 정도 올리는 대신 시즈닝(나무의 균열과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제작공정) 기간을 2주로 늘려 야마하와 경쟁하겠다"며 "스타인웨이라는 든든한 배경에 힘입어 투자가 가격 상승과 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된 만큼 내년도 영업이익률을 기존 5%대에서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자신했다. 삼익악기는 아직 스타인웨이의 경영진이 아닌 재무적투자가에 머무르고 있다. 155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미국ㆍ유럽 악기의 대명사로 불렸던 스타인웨이의 위상을 감안할 때 자칫 동양의 후발주자인 삼익악기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에 거부감이 클 수도 있다는 점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향후 스타인웨이의 경영구도와 관련, 김 회장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달라고 하면서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경영 참여나 추가 지분획득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미 피아노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삼익악기는 이제 시야를 넓혀 세계적 기타 업체와의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종합 악기회사로 발돋움할 전략을 착실히 실현하고 있다. 현재 삼익악기는 세계 수준의 유럽 통기타 업체와 전자기타 업체 중 적절한 인수대상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현재의 산업구조로는 처음부터 브랜드를 키워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깁슨과의 협력으로 삼익악기의 기타 제조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만큼 적절한 시기에 추가적인 M&A를 통해 고급 기타브랜드로 도약하겠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요즘 한국 악기산업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중국시장 공략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한국시장의 판도에 대한 질문에는 "일본의 야마하는 일본산 제품에 대한 중장년층의 향수와 좋은 악기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심리를 공략해 국내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는 분석이 나왔다. 야마하는 한국시장의 피아노 보급률이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 직장인들을 주요 소비자층으로 삼는 전자악기 및 관현악기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김 회장은 세계 최대의 악기 수요처로 떠오른 중국도 한국시장과 마찬가지 양상으로 흘러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판매되는 자국산 저가 악기와 중산층을 위한 외국산 중고가 악기, 연주자용 초고가 악기로 시장이 세분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삼익악기는 야마하의 한국시장 공략전략을 벤치마킹해 중국시장에서 야마하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는 "향후 스타인웨이가 보유한 관악기 업체 콘셀마와 협력해 중고가 관악기 브랜드를 만드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며 "약 2년 후에는 브랜드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중국에서도 엔트리 악기시장을 장악해 야마하와 경합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회공헌은 기업활동의 연장 김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에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부터 전국 봉사현장을 누볐던 김 회장이 성공하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부자가 돼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한겨울에도 찬물에 정신지체자들의 옷을 빨던 봉사자의 거북이 등 같은 손을 보며 '천사같다'고 느꼈지만 차마 내 몸을 희생해 봉사할 자신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끊임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라고 고민하던 차에 돈 버는 재주를 살려 세탁기라도 사주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 회장의 사회공헌 방식은 단순하다. 악기를 만드는 회사라는 것을 살려 정서 발달이 중요한 아이들에게 악기를 나눠주고 친분을 쌓은 음악가들에게 재능기부를 하도록 유도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김 회장은 "티셔츠를 만드는 회사는 티셔츠로, 과자를 만드는 회사는 과자로 봉사를 하면 된다"며 "사회공헌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선후배들과 ROTC로 군복무를 하며 쌓은 인맥은 사회공헌 활동의 든든한 지지세력이다. 그는 "오는 12월28일 지휘자 금난새씨와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나눔음악회를 열어 공연 수익금을 기부할 것"이라며 "서울대 ROTC동문출신 기업인들과 함께하는 사회공헌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력 ▦1947년 서울 ▦1970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1979년 스페코 대표이사 ▦1992년 서울대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97년 서울대 공대 최고전략과정 수료 ▦2002년 삼익악기 대표이사 회장 ▦2006년 서울대 총동창회 부회장 ▦2008년 서울대 ROTC 동문회 회장 ▦2010년 코피온 회장 ▦2010년 대한적십자사 RCY 후원회장
印尼 현지공장에 각별한 열정 쏟는 이유는…
"글로벌 생산기지이자 원자재 조달센터"
생산설비 확충등 사업과정 일일이 챙겨
김종섭 회장이 요즘 각별한 열정을 쏟는 곳은 바로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이다. 인도네시아 공장은 지난 2008년 말 중국의 생산라인이 옮겨온 후 삼익악기의 글로벌 주력 생산기지이자 원부자재 조달센터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인도네시아 공장의 균일한 품질과 저렴한 생산가격에 매력을 느껴 전자기타업체 깁슨(Gibson)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주문량을 늘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상태이며 또 다른 세계적 업체들도 삼익악기와 계약하기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김 회장은 인도네시아 공장의 생산설비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인력을 대폭 늘리는 등 현지사업 추진과정을 일일이 챙기고 있다. 현재 2,900여명이 근무하는 인도네시아 공장의 인원은 내년까지 추가로 1,500명 정도 늘어나고 공장 규모도 20%나 확장하는 증설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1992년에 세워진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에 근무한 직원들의 근속년수는 10년 이상. 인도네시아 직원들의 작업 숙련도가 높아 품질관리가 쉽다는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의 경우 일년 새 직원 전체가 바뀌는 일도 있을 정도로 품질 수준이 들쭉날쭉해 생산 관리가 쉽지 않았다"며 "인도네시아는 원부자재 조달이 쉽고 가격경쟁력에서도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자유무역협정(FTA) 관세면제 품목에 악기가 포함되면서 인도네시아산 악기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도 인도네시아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시장동향확인위해 1년 3분의 1이상 해외에서 보내죠"
■김종섭 회장은 전형적 자수성가형 사업가… 2002년 삼익악기 인수 등 M&A 시장 큰손으로 부상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지난 1970년 대학졸업 후 대한항공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한푼두푼 모은 돈을 부동산ㆍ금융상품에 과감히 투자했다. '아파트 경기가 되살아난다'는 뉴스를 보고 그 길로 달려가 200만원에 계약한 아파트가 1주일 새 두 배로 뛸 정도로 운도 따라줬다. 그는 "신문을 보다가 새로운 제도, 산업 동향 등이 소개되면 바로 부동산ㆍ은행 등을 찾아 투자를 했다"며 "항상 신문에 돈 버는 길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도 귀찮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모은 종잣돈을 바탕으로 1979년 스페코라는 플랜트 전문업체를 세운 김 회장은 2002년 법정관리 위기에 내몰린 삼익악기를 인수해 스페코·삼익악기 회장 자리에 올랐다. 최근에는 명품 악기회사 스타인웨이의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며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김 회장은 일년의 3분의1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중국ㆍ인도네시아ㆍ미국 등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스페코와 삼익악기의 현지 법인을 관리하고 세계시장 동향을 현지에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해외에서는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만 그는 꼭 하루이틀 정도는 관광ㆍ휴식 일정을 끼워넣는다. 그는 "관광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곧 현지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필수"라며 "사업도 '펀(fun) 경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호탕한 성격 덕분에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한국에 돌아오면 여기저기 골프모임에 불려 다니는 적도 많다. 평소 '주니어 ROTC'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ROTC 활동에 애정을 갖고 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등 서울대 ROTC 동문들과 자주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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