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김모씨는 그룹계열 증권사의 추천으로 지난 2012년 브라질 국채에 5,000만원 투자했다. 금융위기 이후 브라질 경제가 회복세를 탄데다 연 10%가 넘는 금리에 비과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는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헤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그는 2,000만원 이상 손해를 봤다. 김씨는 "손실이 커 해약할 수도 없고 퇴직 후 브라질 여행 때나 쓸 수 있게 계좌에 남겨둬야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반면 같은 회사의 또 다른 임원 이모씨는 비슷한 추천을 받았지만 브라질 채권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10년 이상 신흥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한 경험상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브라질은 가격 사이클이 바뀌면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자 브라질 채권을 산 투자자들이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달러 대비 헤알화 환율은 23일(현지시간) 4.1783헤알로 전날보다 3.16% 올랐다. 올 들어서만도 헤알화 가치는 36.39%나 떨어졌다. 국내에서 브라질 국채가 인기를 끌었던 2011~2012년에 비하면 헤알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한 상태다.
브라질 국채 금리는 10년물 기준 16% 수준으로 신흥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환차손과 채권 가격 하락으로 국내 증권사들이 브라질 채권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2011~2012년에 채권을 산 투자자라면 50%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 샀더라도 손실률은 30%가 넘는다. 국내에서 판매된 브라질 국채는 약 6조원 수준이며 이 가운데 90% 이상을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중반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투자했던 중국과 베트남 투자펀드가 금융위기 등으로 큰 손실을 본 것처럼 브라질 채권 또한 투자자들에게 악몽만 남길 공산이 크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글로벌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도 해외투자펀드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등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투자 대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 하고 △각 자산을 직접 굴리거나 양호한 해외 상품을 고를 수 있는 글로벌 전문가가 거의 없으며 △대다수 투자자들이 중장기적 투자철학 없이 단기 수익률에만 급급하는 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해외 투자는 언제든 브라질 채권처럼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행 따라 특정 자산, 특정 지역으로 쏠리는 것이 우리 해외 투자의 가장 큰 문제"라며 "실력이 안 되는데 마구잡이식으로 투자하다 보면 국부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투자가 필요하지만) 정부는 성급하게 이를 장려하는 대신 업계와 투자자들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