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세상은 요지경

사회구조 점차 개인화 변모<br>독립심 보다 외로움 느껴<br>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br>소통의 부재로 신뢰 잃어가


중국 고사에 나오는 요지경(瑤池鏡)은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공의 장난감이다. 요즘 말로 얘기하면 세상사를 확대하거나 축소해 크게 혹은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이것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진위(眞僞)ㆍ미추(美醜)ㆍ정사(正邪) 등을 모두 들춰낼 수 있다 보니 요지경이라는 비꼬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작금 우리 사회의 주변을 돌아보면 글자 그대로 세상은 요지경인가 싶다. 양극화의 와중에서 서민은 담배를 끊고, 부유층은 귀금속을 사들인다. 젊은 사람들은 집을 장만하기 전에 자동차를 굴리는 데 관심이 많다. 훔치는 것도 동기가 다른 법인데 먹기 위한 좀도둑은 벌을 받고 뇌물 받은 정치인은 살아나간다. 젊은 사람들이 취직이 안 돼 걱정이 많은데 도시에는 일자리가 없고 농촌에는 사람이 없어 한숨짓는다. 일자리 자체가 늘어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젊은이들 가운데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느라 오랫동안 취업을 하지 않는 '장미족'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사회구조가 점차 개인화되면서 사람들은 일종의 모래알처럼 흩어져 독립심을 갖기보다 외로움을 느끼고 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목적 지향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지다 보니 서로 끈끈한 유대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계산적이고 변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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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과 해방을 약속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물질적 풍요 아래 정신적 빈곤을 겪으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갈등하면서 신뢰와 연대를 잃어버리고 있다. 최근 지하식당에서 아이에게 화상을 입히고 도망간 가해자를 찾아달라는 '국물녀' 사건이 좋은 보기다. 사건의 진상은 중년 아주머니가 된장국물을 들고 있다가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가 갑자기 뛰어오다가 부딪쳐 서로 화상을 입었으나 뒷수습을 하지 못하고 가는 바람에 사단이 난 것이다. 만일 어머니와 부딪혔다면 아이를 타이르거나 위로해주는 것으로 끝날 일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도식으로 풀려고 하니 답답할 뿐이다. 마침 폐쇄회로(CC)TV가 있어 시비를 가릴 수 있다고 하니 요지경이 안 됐으면 하고 기대한다.

강용석 의원의 박원순 시장에 대한 '묻지마'식 폭로도 요지경 속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느 사회나 매사에 시비와 곡절은 있기 마련이고 의혹을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하등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은 사실 관계의 확인 없이 특정인의 병역사항을 거짓으로 호도한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강 의원의 무책임한 행위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사진을 유출한 의료 윤리가 걱정이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법의식과 윤리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방식의 자기합리화는 이른바 '나경원법'과 '정봉주법'에서 찾을 수 있다. 악의적이고 불법적인 폭로를 막기 위해 제안된 두 법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나경원법이나, 비록 허위 사실이라도 상대편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만 죄가 된다는 정봉주법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서로 다른 정파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정치적 폭로가 허위라면 당연히 도의적이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를 걸러내는 시민의식과 공론이 더 중요하다.

4ㆍ11 총선을 앞두고 불법ㆍ탈법ㆍ위법이 벌써 판을 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일을 제외하고 인터넷ㆍ전자우편ㆍ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있다. 모처럼 자유롭고 분방하게 의견을 내놓고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민 참여의 기회다. 그러나 모바일 선거운동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ㆍ모함ㆍ음해와 같은 흑색선전으로 잘못 나아갈 경우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선거는 빛이 바랠 수 있다. 총선이 요지경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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