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청소년 보호 수준을 평가한 결과 케이블TV 채널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케이블의 경우 시간당 10.7회의 폭력 장면을 묘사해 지상파 1.9회에 비해 6배 정도 높았으며, 선정적인 장면은 시간당 6.3회로 지상파 0.8회에 비해 8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지상파 4개 채널과 청소년이 즐겨보는 케이블 채널 16개 등 20개 채널, 총1,277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청소년 보호 수준을 시범평가한 결과이다.
심한 경우 어떤 채널에서는 폭력 장면이 매일 시간당 평균 32회 방송되고 있었으며 선정적 장면은 평균 25회까지 방송되는 채널도 있었다. 이 수치는 각각 2분에 한번 꼴로 시청자들이 폭력성과 선정성에 노출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채널시대 무한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로 보기에는 채널사업자의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아쉽다.
그렇다고 폭력성ㆍ선정성 문제가 케이블 채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지난 이야기지만 추석 연휴기간 동안 지상파 채널의 특선영화에서는 칼과 도끼와 총ㆍ각목이 난무하고 욕설과 피가 범벅이었다. ‘강력3반’ ‘친절한 금자씨’(이상 KBS) ‘공공의 적2’ ‘싸움의 기술’(이상 MBC) ‘가문의 위기’ ‘투사부일체’ ‘조폭마누라2’(이상 SBS) 등 온통 폭력이 소재였던 까닭이다.
지상파 채널의 경우 폭력성과 선정성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그램 내용에서 보여주는 비윤리적이고 반사회가치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반사회가치 내용이란 욕설이나 비하ㆍ무시ㆍ조롱ㆍ인격모독의 언어, 폭력의 묵인, 불륜과 같은 비도덕적 가치, 외모나 학벌 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소수자나 성적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 등을 말한다. 지상파 채널에서 보여주는 사회가치는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학습 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례로 연구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심층인터뷰한 내용 중에는 초등학교 딸아이가 아빠의 출장길에 엄마에게 달려와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는 거라며 말리라는 조언을 한다 하니 불륜으로 얼룩진 방송프로그램의 영향 탓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청소년을 유해매체 및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취지로 지난 97년 발효된 청소년보호법이 올해로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청소년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일부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방송프로그램의 청소년 유해성과 관련해서는 그리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방송의 유해성이 뭐 그리 심각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방송인들 대부분의 인식 또한 그러하다.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청소년을 따라가기 바쁘다고들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은 우리에게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정서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교과서와 같다. 사교육시장과 참고서가 아무리 많아도 교육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교과서인 것처럼 방송도 우리 사회의 가치와 정서를 책임지는 중심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업자는 물론 방송위원회조차 청소년 보호를 위한 예방조치에 대해 무관심하다. 프로그램연령등급제나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나 실제 운영은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12세 이상 시청 가능한 프로그램에서의 폭력성이 ‘15세 이상 시청가’에서보다도 더 높게 나왔다. 오후10시까지로 돼 있는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 역시 제도를 위한 제도이지 실제 청소년이 많이 시청하는 시간대와는 거리가 멀다.
방송의 청소년 보호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까닭은 비단 오늘의 청소년에게 미칠 방송의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 이 시간 태어나는 아이가 앞으로 10년 동안 자라면서 보게 될 우리의 방송은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