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그리스의 비싼 민주주의

"지난해에는 미코노스섬으로 휴가를 갔다 왔어요. 올해는 엄두도 못 냅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해도 벌이는 지난해보다 반으로 줄었거든요."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택시에 오르자마자 기사는 이내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신세 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대화의 끝은 결국 정치 얘기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어느 정당을 찍었느냐고 묻자 한참을 머뭇거리다 "시리자(좌파연합)에 표를 줬다"고 털어놨다. 시리자는 "구제금융은 받아도 허리띠를 조이기는 싫다"며 떼를 쓰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가 이끄는 정당이다. 무슨 생각이었느냐고 되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민주주의는 원래 비싼 겁니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원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진짜 민주주의의 역사는 채 40년에도 못 미치는 나라다. 19세기까지는 오스만(터키)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이어 군사 독재 정부가 들어섰다. 간난신고 끝에 1975년 민주 헌법이 제정되자 그리스인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앞날도 밝아 보였다. 당시 그리스가 생산한 아이졸라(IZOLA)라는 이름의 냉장고는 값싸고 튼튼한 품질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 정도였다. 제조업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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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괴물을 만나 엇나간 방향으로 커가기 시작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가입 이후 쏟아져 들어온 저금리 자금은 성장 대신 복지 잔치로 흥청망청 새어 나갔다. 공무원 조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해져 일자리를 가진 사람 4명 중 1명이 공무원 명함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리스 실업률이 25%에 육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의 피와 땀을 짜내 공무원 조직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요즘 그리스인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과 정부가 지금의 위기를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선출하고 '공짜 점심'을 즐긴 것도 그리스인 자신들이다. 그리스인들은 지금 값비싼 민주주의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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