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 아니냐고요? 엄살이라면 왜 멀쩡한 사업부지를 팔고 가격을 20~30%나 낮춰 땡처리업체들에 넘기겠습니까. 이 상태라면 한달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습니다.” 한 중견 주택건설업체 자금담당 임원의 항변이다. 지금 주택건설업계는 벼랑 끝에 선 형국이다. 올들어 계속 나도는 부도 공포가 더 이상 우려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주택사업이 주력인 중견업체는 웬만하면 다 금융권의 요주의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며 “조금만 이상한 소문이 돌면 해당 업체 자금담당 직원은 하루종일 입주예정자와 채권 금융기관의 전화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부도 도미노’는 시간 문제일 뿐=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느 업체가 위험한지는 이미 지나간 얘기”라며 “지금은 이들 업체 중 누가 먼저 못 버티고 쓰러지느냐가 관심사”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정부 공식통계로만 13만채를 넘어섰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미분양에 묶인 자금만도 22조2,000억원에 이르고 건설업체들이 부담하고 있는 금융비용도 연간 2,6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의 자금난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히 미분양만이 아니다. 오히려 분양이 완료돼 입주를 했거나 입주를 앞둔 아파트에서 미분양 못지않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웬만한 지방 아파트는 분양 당시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후불제를 적용했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입주시점의 자금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입주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수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수도권에서조차 2만여채가 미분양을 빚고 있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연쇄 도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집값’ 노이로제 걸린 정부, 대책 외면=여전히 정부는 ‘책임론’만 내세우고 있다. 업체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려놓았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돈이 된다니까 너도 나도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업계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푸는 것은 모럴 해저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의 시장상황에 대한 국토해양부의 인식은 업계와 확연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최근 “지금은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는 시점”이라며 “(미분양 등) 부작용은 업계가 현장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기는 어렵다”며 규제완화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정부가 업계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선뜻 규제완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겨우 진정된 집값이 다시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칫 규제를 풀 경우 ‘또다시 가진 자들의 배만 불리려고 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어 규제완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업계는 정부가 지나치게 집값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실장은 “지금과 같은 경제상황에서 건설업체들이 연쇄 부도를 낸다면 국가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