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미국ㆍ일본ㆍ유럽처럼 독소 조항(포이즌필), 전략산업에 대한 정부보호 조항 등 다양한 경영권방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제조업의 경영권 방어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기업 설비투자 등 생산적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의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 당국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놓고 엇박자를 보이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28일 한국은행이 분석한 ‘우리 기업의 장기투자증권 증가요인’ 자료에 따르면 만기 1년 초과 채무증권과 관계회사 주식, 매도가능 증권 등으로 구성되는 장기투자증권이 제조업체들의 총자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990년 2.8%에서 1998년 9.2%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는 14.5%로 커졌다. 이 때문에 1990년부터 2006년 사이 총자산 증가율은 10.5%였으나 장기투자증권의 증가율은 20.1%에 달했다. 국내 제조업들이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기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투자에 몰두했다는 뜻이다. 기업형태별로는 1990~2006년 대기업의 장기투자증권 비중이 14.6%포인트 상승해 중소기업(7.3%포인트)보다 상승폭이 컸으며 수출기업(13.9%포인트)이 내수기업(10.3%포인트)보다 장기투자증권 비중 증가폭이 컸다. 이처럼 기업들의 지분투자가 늘어난 이유로는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가 부실한 계열사에 대한 증자 참여, 글로벌 경영을 위한 해외 투자 확대, 신규사업 진출을 위한 기업 인수, 증시 호황에 따른 주식 평가액 증가 등이 꼽힌다. 특히 외국인투자가 등에 의한 적대적 M&A 위협이 커지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협력회사 및 관계회사 간 상호 지분 투자,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기업 분할 등이 많아진 것이 지분 투자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송윤정 한은 기업통계팀 과장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지분투자가 이어지면서 설비투자 등 기업 자금의 생산적 사용이 저해되고 있다”며 “황금주ㆍ차등의결권ㆍ포이즌필 등과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M&A가 활성화되면 자본시장 육성, 기업가치 증대 등의 장점이 있지만 고배당, 자사주 매입 등으로 기업들의 R&Dㆍ설비투자 감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특히 포스코 등 경영을 잘하는 우량기업도 M&A 위협을 받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