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공짜복지의 암울한 미래

지속불가능한 무상복지 남발에 예산 바닥… 책임 떠넘기기 급급

급식·보육·공무원연금 문제 등 개혁 못하면 자녀세대 부담 커져

사회적 대논쟁·합의 이끌어낼때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K씨는 최근 80대인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집안에서 간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가족회의 결과였고 환자 본인도 동의했다. 그래서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간병료를 계산하기 위해 요양원 총무부에 들렀다가 K씨는 놀랐다. 월 150만원의 비용 중 본인 부담액은 5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치매 등급에 따라 일정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제도에 따른 것이었다. 매달 100만원의 공돈은 챙겼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데도 국가가 대신 내줬다는 데 일종의 부채의식이 생겼다. 여기다 자신과 같은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이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결국 집집마다 하나둘뿐인 아들딸이 이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14일 퇴임을 앞둔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수천만원의 연금소득과 5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내가 (퇴직 후)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세상을 등진 송파구 세 모녀는 연령·전월세를 기준으로 매달 5만140원을 납부해야 했다"며 현행 건보 체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혹시 선택권이 있다 해도 피부양자 등재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퇴직 후 15일이 지나면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고 건강보험료는 0원이 된다.

정치권이 보육과 급식 등 무상 시리즈 복지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으로 촉발된 이 논쟁은 남경필 경기지사의 가세에 무상보육 논란까지 겹치면서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책임 떠넘기기가 한창이다. 여기다 이들의 배후나 지원군으로 보이는 중앙과 지방의 언론마다 각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논리를 펴고 있다.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지만 '공짜 복지 시리즈'의 파국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찾아온 듯하다.


그러나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재의 복지 수준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지금 우리가 부담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녀들, 미래세대가 부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사탕발림도 있었지만 결국 당장의 '공짜 점심'에 취한 유권자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문제를 키워온 셈이다.

관련기사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각종 선거 때 야기된 '무상 세례'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대선을 거치면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낸 공짜 복지 논란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난 다음의 뒤늦은 사과였다. 야당은 현재의 복지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법인세 인상 등 '증세'로 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포퓰리즘으로 남발한 공짜 복지의 해결책을 근원적으로 찾았다기보다는 헛된 말에 대한 자기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글렌 허버드 교수는 '강대국의 경제학'에서 과잉 복지지출에 따른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 통제는 "현재의 정치게임 규칙 아래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 이론을 적용해 결국 공화당이나 민주당 정부든 정부지출을 높게 가져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미국 사회를 분석한 얘기지만 지난 수차례 선거에서 복지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지속 가능할 때만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공짜 복지 문제뿐 아니라 최근의 쟁점인 공무원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결국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미래의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 역사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든 자녀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든 우리 사회가 감당할 적정복지수준에 대한 대논쟁과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때다.

/온종훈 논설위원 jhohn@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