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GQ를 말한다] 전광우 국제금융대사(딜로이트코리아 회장)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해야 글로벌화 진전"


“글로벌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의 하나는 ‘얼마나 많은 해외 전문인력이 국내에서 활동하는가’라는 점이다.” 전광우(사진) 국제금융대사(딜로이트코리아 회장)는 “금융 국제화 시대에 금융허브를 지향하면서 한편으로 ‘토종’ 회사를 강조하는 모순은 딱하기 이를 데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언어의 벽을 극복하기 위한 영어구사 능력의 배양도 주요 과제”라며 “이웃 일본이 국제금융센터 구축에 실패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언어의 국제화에 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인 전문 인력과 함께 한인 네트워크의 활용도 강조했다. 다만 “그들이 국내 금융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애국심에 호소만 할 수는 없다”며 “시장가격에 상응하는 차별화된 대우를 할 수 있는 경영풍토의 조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에서 시작된 신용경색 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세계화 반대 입장을 옹호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되고 글로벌 리스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배가하라는 메시지로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에 대한 생각이 많을 텐데.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하드웨어 측면과 소프트웨어 측면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최근 좀 줄어들긴 했지만 외국인 투자가의 국내 주식시장 비중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외환자유화도 지속적으로 추진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확대됐다. 실물 부문에서도 국제무역의 규모 증대는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자유무역체제의 확대도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뤘다. 반면 소프트웨어 부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론스타 문제 등에서 부각된 반(反)외자 정서나 일부 노조의 비생산적 투쟁 행태 같은 경우는 어려웠던 IMF 직후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친 예다. 정부의 규제개혁이나 감독체계의 선진화도 아직은 미흡한 부분으로 더 강도 높은 시장친화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의 글로벌 성장전략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미진하다. -IMF 당시 한국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최근 세계적인 국영투자기관인 테마섹(Temasek) 회장과 면담한 적이 있다. 당시 금융허브 구축과 연관해 한국의 글로벌 수준을 높이는 데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싱가포르의 경험에 비춰볼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글로벌 마인드의 구축’”이라는 것이다. 물론 원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가 글로벌 시대에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이나 유형적 인프라의 구축 못지않게 글로벌 마인드를 배양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 마인드는 어떤 벽을 제거해야 가능한가. ▦시장의 자율적 기능 강화나 법ㆍ질서를 지키는 선진 시민의식도 글로벌 마인드 구축의 필수요소다. 다른 국가와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정서로부터 이해와 존중의 정신으로 바꿔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수용의식도 키워나가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건전한 세계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 과정의 부정적 측면은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이에 집착하기보다는 더욱 능동적이며 전향적인 마인드 세트를 정착시켜 새로운 글로벌 리더로서의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금융 국제화 시대에 금융허브를 지향하면서 한편으로 ‘토종’ 회사를 강조하는 것은 딱한 모습이다. 언어의 벽을 극복하기 위한 영어구사능력의 배양도 주요 과제다. 이웃 일본이 국제금융센터 구축에 실패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언어의 국제화에 뒤처진 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금융허브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전히 인력 양성이 문제다. ▦돈장사는 사람에 달렸다는 얘기처럼 금융의 경쟁력이나 글로벌화는 인력에 달려 있다. 거시적 차원에서 금융허브 구축이나 개별 금융기관 차원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인력의 양성과 유치가 핵심 과제다. 금융인력 양성을 위한 전반적인 수급전망과 대책을 망라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특화된 MBA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전국민의 금융지수(Financial Quotient)를 높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교육의 실질적인 효과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해외의 한인 및 외국인 인력 유치를 위한 적절한 거시 및 미시적 인센티브의 도입, 체류자들의 국내 생활환경 개선 노력도 추진돼야 할 과제다. -금융인력 양성은 물론 해외 한인네트워크 등을 활용할 필요도 있지 않나. ▦한인 네트워크의 활용은 잠재적 인력의 통계확보 면에서도 필요하며 우리 해외 공관도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들이 국내 금융산업현장에서 실제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늘 애국심에 호소만 할 수 없으니 시장가격에 상응하는 차별화된 대우를 할 수 있는 경영풍토의 조성도 수요여건 개선 차원에서 필요하다. 금융전문가가 대우받으면 금융인력 육성은 저절로 된다는 얘기가 있다. 글로벌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의 하나가 바로 얼마나 많은 해외 전문인력이 국내에서 활동하는가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신종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은 서브프라임 위기로 요동치고 있는데.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글로벌 개방체제하에서는 크고 작은 경제위기와 파급은 생길 수밖에 없다. 달라지는 것은 위기의 원인과 파장의 정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 문제는 자산유동화 추세의 확대, 세계적 과잉 유동성과 펀드의 수익경쟁 등을 배경으로 미국 주택시장 위축에 따라 촉발됐다. 시장심리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는 것은 파생상품시장이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등과 연계,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에 기인하는 것으로 90년대 IMF 위기나 80년대 미국의 S&L위기 등과 차이가 있다. 최근 신용경색 위기가 세계화 반대 입장을 옹호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되고 글로벌 리스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배가하라는 메시지로 들어야 한다. -국내 영향이 적은 것은 그나마 글로벌화가 덜 돼 부작용이 좀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국내 은행의 직접적인 피해는 자산 구성면에서 서브프라임 채권 보유 지분이 낮은 덕을 보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모기가 무서워 늘 문을 닫고 산다면 모기에는 안 물리겠지만 다른 손해가 많듯이 모기장이나 모기약은 준비하되 문은 열고 살아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금융기관의 경영에 있어 리스크는 회피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개방체제하에서 글로벌 성장전략은 국가정책이나 기업경영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분명한 것은 파생상품의 개발을 위시한 금융환경의 급변은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의 쏠림으로 인한 부작용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소위 세계 톱클래스 금융기관들도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골드만삭스 등 세계유수의 우량 투자은행까지 신용경색 위기가 전이되는 문제는 역시 과잉 유동성, 헤지펀드의 높은 레버리지(차입의존도), 수익성 증대를 위한 대체투자 증가로 나타난 쏠림 현상(herd behavior)에서 찾을 수 있다. 쏠림 현상은 시장 심리의 변화에 따라 위기를 증폭시켜 ‘과열과 파열’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 대책의 내용과 평가는 민감한 사항이지만 일부에서는 미국 연방제도이사회(FRB)의 초기 대응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금리인상도 결과적으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물론 과도한 정책적 대응은 오히려 위기를 자초할 위험을 늘 안고 있지만 이번 FRB의 경우와 같이 너무 안일하게 반응한 것도 시장 참여자들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적 신용평가회사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정보로 시장을 오도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의 정보공개나 운용상 불투명성도 도마에 오르는 상황이다. -국내 역시 관련 대책을 수립하고 있는데. ▦국내 상황은 현 문제의 본질 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 과도한 반응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태풍이 피해만 주는 것이 아니고 해양시스템을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하듯이 시장의 충격 또한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출경쟁력에 부담이던 달러 및 엔화 대비 환율이 단기간에 균형가격으로 조정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과도한 변동성은 경계해야 하지만 전반적인 국내 경기회복세와 남북관계 개선 등을 감안할 때 주식시장의 조정도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외환위기 발생 10주년을 맞았지만 국내 금융산업의 글로벌화가 미진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내은행은 자본적정성이나 자산건전성ㆍ수익성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했다. BIS 비율은 7% 수준에서 13%로 높아졌고 부실자산비율은 10% 이상의 수준에서 대폭 개선돼 1%대에 머물고 있다. 수익성도 자본수익률이 마이너스에서 20% 이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발된 특수이익과 예대마진에 집중된 수익구조, 취약한 지배구조와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한 최고경영진 등으로 국제경쟁력 면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다. -금융허브 비전의 실현성은 어떻게 보는지. ▦금융허브 비전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 즉 관계자들의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 주도 마인드로부터 시장 플레이어의 창의성과 리더십을 키워나가도록 규제의 혁파가 필요하며 모든 관련부처 간에 허브 비전을 공유하고 협조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국제화를 추진할 때 구시대적 산업정책 마인드는 맞지 않으며 시장이 리드하도록 정부는 촉매적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금융허브 구축작업의 진척이 느리고 구호만 무성하고 실행이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외국자본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외국투자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해외투자가들이 지적하는 대표적 리스크 요인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다. 지난해 북핵 사태로 악화됐으나 6자회담의 진전과 정상회담의 기대로 상당히 완화되고 있다. 한미 FTA도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상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한국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이점을 반영하고 있다. 경제정책과 금융감독의 일관성ㆍ신뢰성도 외국 투자가들이 눈여겨본다. 또 론스타 문제로 부각된 반외자정서와 보호주의적 성향이다. 투자수익을 리스크 감수에 대한 보상으로서 평가하는 데 인색하며 그 기준도 국내외 투자자 간에 차별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외국인투자에 관한 정부 부처간의 이견도 우려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처하기 위한 입법 필요성에 대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의 입장 차이가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로 전달되지 않도록 사전 조율돼야 한다. ■ 전광우 대사는 누구 환란때 국가 IR 맡아 好조건 국채발행 성공 전광우 국제금융대사가 한국과 연을 본격적으로 맺게 된 계기는 지난 97년 외환위기다. 당시 전 대사는 세계은행의 금융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의 지원 요청에 그는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특보로 임명돼 금융구조조정ㆍ자본시장활성화 등 대책마련은 물론 가장 중요했던 국가IR를 수행해 좋은 조건의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2000년 국제금융센터 제2대 소장으로 취임, 국제금융 관련 이슈를 소개하고 전략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전 대사는 우리금융그룹이 설립된 뒤에는 초대 전략총괄부회장으로 선임돼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의 최고경영진으로 활동했다. 2004년 이후에는 세계적인 회계ㆍ컨설팅 그룹 계열인 딜로이트(Deloitte)코리아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올해 초에는 장관급 인사와 해당 분야 최고전문가에 부여되는 대외 직명대사인 대한민국 국제금융대사로 선임돼 국가IR 등의 행사를 이끌고 있다. 전 대사는 현재 포스코 사외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전 대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 경제학ㆍ경영학석사(MBA)와 재무 분야 경영학박사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수료한 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경영학 교수와 메릴린치 등 투자은행의 컨설턴트를 거쳐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15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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