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들이 주유소 유치 경쟁을 자제하기로 담합한 사실을 적발하고 총 4,3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규모로는 2008년 적발한 LPG 사건(6,789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27일 공정위는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정유4사가 시장점유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2000년부터 원적지 관리 원칙에 따라 주유소 확보경쟁을 제안하기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과 검찰고발 등 제재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회사별 과징금 규모는 ▦SK(SK(주),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1,379억7,500만원 ▦GS칼텍스 1,772억4,600만원 ▦현대오일뱅크 744억1,700만원 ▦S-Oil 452억4,900만원 등 총 4,348억8,800만원이다. 이중 담합을 주도한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에 대해서 검찰고발하기로 했다. 다만, 담합사실을 자진고백(리니언시)한 GS칼텍스에 대해서는 과징금 및 검찰고발이 면제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3월 정유 4사 소매영업 팀장들은 ‘석유제품 유통질서 확립 대책반’ 모임에서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원적관리 원칙’에 따라 주유소확보 경쟁을 자제하자고 합의 했다. 원적관리란 정유사들은 주유소의 기존 상표를 원적(原籍)으로 보고, 서로의 기득권을 인정해 경쟁사의 동의 없이 타사 원적 주유소를 유치하지 않는 업계의 관행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주유소가 거래 정유사 변경을 요청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하거나 불가피하게 변경하게 되면 타 정유사와 주유소를 맞교환(트레이드) 하기도 했다.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정유사 영업사원들이 원적 주유소를 협의 교환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최소 20여건 이상 확인되며 심지어 정유사 3사간 ‘3각 트레이드’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의 합의 내용에는 주유소 주인 변경 등으로 인해 다른 정유사가 원적사의 양해 없이 정유소를 유치해가면 대응유치(카운터 어택)을 수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정유사와 계약관계를 종료하고 정유사 브랜드를 달지 않은 ‘무폴 주유소’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인정, 통상 3년간 타사 상표로 변경하는 것을 제한했다.
특히 SK, GS, 현대오일뱅크는 2001년 9월 ‘복수상표표시제도’ 도입되면서 주유소 유치경쟁이 촉발될 위험이 생기자 주유소가 복수상표 신청을 할 경우, 브랜드를 떼 버리는 등의 방식으로 복수상표표시제 정착을 공동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이 같이 정유사들의 폴 유치경쟁이 제한되자 주유소 점유율은 지난 10년간 거의 변동이 없었다. SK의 경우 전국 주유소 시장 점유율이 2000년 36%였으나 2010년 35.2%, GS는 26.5%→26.8%, 현대오일뱅크는 20.9%→18.7%, S-Oil은 13.2→14.7%로 변화가 미미했다.
신영선 국장은 “주유소 확보경쟁 제한은 주유소 공급 가격인하를 억제해 결국 소매가격 인하도 억제되는 효과가 있다”며 “원적관리 담합이 없었다면 정유사들이 주유소확보를 위해 기름을 더 싸게 공급했을 것이고 이는 소비자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