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자본에 대한 '따뜻한 과세'


지난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경제체제로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 이후 20여년이 흐른 지금 자본주의는 세계화를 통해 거의 전세계를 아우르는 경제체제로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본의 소수집중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는 자본주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현상이기 때문이다. 주식·파생상품 차익 과세를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선진국들이 겪었던 자본주의의 문제점들도 함께 경험하고 있으며 과거 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에 의존해온 결과 자본의 집중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자본을 가진 소수야말로 세계화를 통한 국경 없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세계화의 진전이 결과적으로 부의 집중 현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본의 속성상 따뜻한 자본주의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반대로 인간사회인 만큼 냉혹한 자본주의가 무한히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괴리를 메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의 하나가 조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에 상당한 조세부담을 지우면 사회적 간극을 메우는 수단으로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산요소 가운데 자본이 가장 이동성이 높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자본에 대한 세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여기에 조세정책의 딜레마가 있다. 자본의 이동 가능성이라는 현실적 이유로 자본에 대한 세부담을 줄여주고 있지만 세부담 경감이 저축이나 투자의 증가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일관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자본이득을 포함한 광의의 자본소득에 대해 근본적인 조세정책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매우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을 일부 덜어줄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주식양도차익과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과세다. 주식시장이 발달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주식양도차익에 과세하고 있으며 소득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할 이유는 없다. 아직 소득과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우리나라와 대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다만 제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염려된다면 점진적인 접근방법으로 현행 대주주 범위의 기준금액을 낮춰 과세범위를 점차 넓혀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과세는 주식과 마찬가지로 양도차익에 대한 소득과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현물주식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제도가 도입될 때까지 과도기적으로 거래세를 부과해 파생금융상품에 의한 과도한 투기를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생금융상품은 헤지라는 본연의 기능이 있고 어느 정도의 투기는 유동성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 점진적 추진으로 충격 줄여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일부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헤지와 괴리가 있다. 유동성을 위한 유동성 공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세계적 시장으로 성장한 우리나라 파생금융상품시장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계속 어떤 종류의 세금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파생금융상품시장의 규모가 현물시장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파생금융상품시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종류의 유동성은 단순히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것 이외에 시장 기능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할 게 없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도박산업도 나름의 수익구조와 고용효과가 있겠지만 바람직한 사회현상이라고 강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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