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살생부 더 이상 없어야

내각제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든지 간에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것은 정치인들 권력싸움의 한 측면이었을 뿐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내각제를 내세웠다가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전환했던 과정이나, 노태우 정권의 3당 합당과 내각제 개헌 추진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은 당시 집권층의 정치적 영향력 연장이나 권력 나눠먹기의 한 방편으로서 내각제가 논의되었다는 사실이다.현재 제기되고 있는 내각제 또한 우리 경제의 회생에 큰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국민생활의 희생을 대가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우선 경제정책 추진의 유효성에 관한 지난해의 경험을 되새겨보자.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이었던 5대그룹 구조조정은 대외신인도 회복과 경제체질의 강화를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연말에 가서야 대통령의 직접 개입으로 큰 그림이 완성되었지 않은가. 다수의 정파로 구성될 내각제 내각의 장관들과 단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총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우리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자질과 국회활동의 자세를 보면 이러한 문제해결 능력에 더 큰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가경영에 필요한 전문성, 중요한 정책결정의 기준이 될 정치이념, 국민에 대한 봉사의 바탕이 될 성실성 등 어느 면에서 판단하더라도 정치인들 대다수가 수준 이하다. 그들은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할 능력도 없다. 그들은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근거 없는 소문이나 일방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을 욕지거리와 섞어서 고성으로 내지르는 저질 정치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최근에도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정부를 개혁하기 위해서 입안·제출된 규제개혁법안들을 관련 이익집단들의 로비에 휘말려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이 또한 그들이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나눠먹기식으로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을 구성하게 될 경우 경제정책의 일관성 또한 크게 훼손될 것이다. 우리는 근래에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신 경제」니「제2건국」이니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그에 수반된 급격한 정책변화를 경험했으나, 다행스럽게도 5년이라는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처럼 총리와 내각이 1년도 못되어 계속 바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경제정책의 예측이 매우 어렵게 되고 이에 따라 기업활동의 의사결정 또한 혼란스럽게 되어 경제를 크게 위축시키게 될 것이다. 세계 경제가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현재의 국제 경제질서를 고려할 때 우리 경제의 효율적 움직임을 위해서 경제정책의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다수의 정파로 구성된 내각과 총리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일본의 내각들이 타이밍 맞는 정책결정을 못하여 일본 경제의 불황이 더욱 장기화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특히 정치이념이나 정치자금과 관련된 정파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더욱 어려워진다. 한국의 정치현실에 있어서 정파간의 이념차이는 거의 없기때문에 각 정파는 자금동원력이 풍부한 보스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정파와 특정 재벌간의 유착이 구조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재벌들간의 이해관계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파들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 조정과정에서 정책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함은 물론 정책의 투명성이 상실될 가능성도 크다. 내각제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대통령에의 지나친 권력집중이나 무능한 대통령이 선출됐을 경우의 문제 등은 국회의원 선출 방법의 개선이나 의회의 행정부 견제기능 강화 등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금융권의 꺾기 관행이 개선되고 은행의 대출금리와 외환수수료가 낮아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풍토 하에서 수준이하의 정치인들이 나눠먹기식으로 운용하게 될 내각제가 어떻게 경제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현재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회생이다. 정치인들은 당분간 경제회생에만 전념하면서 국민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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