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히딩크 경영학'의 본질

기업경영만큼 유행을 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유행을 탄다는 것은 그만큼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경영기법의 세계적인 조류를 형성하는 선도자 역할을 한다. 특히 지난 80년대 이후 미국경제가 경쟁력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하면서 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경영기법들이 우후죽순처럼 선보였다. 감량경영을 의미하는 다운사이징, 구조조정을 뜻하는 리엔지니어링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혁신적인 경영방식을 개발해 부실기업을 정상화시키고 이익을 많이 내는 전문경영인들은 보수에다 사회적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웅'이 된다. 크라이슬러를 부도위기에서 구한 리 아이어코카, 경쟁력을 잃어가던 공룡 GE를 세계 일류기업으로 일으켜 세운 잭 웰치 등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최고의 경영인들이다. 이말 한마디는 경영의 교과서와 같은 권위를 누린다. 세계의 기업인들은 이들의 경영기법을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오너들을 중심으로 경영철학과 이념을 담은 슬로건을 만드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정도경영, 세계경영, 가치경영, 고객만족경영, 인화경영 등 나름대로 이론적 체계와 틀을 갖춘 경영기법들이 적지않다. '매기경영'이란 것도 있었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피라미들이 크고 힘센 고기들한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잽싸게 움직여야 하는데 매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러나 그 뒤 몰아닥친 외환위기와 함께 투명성이 문제가 되면서 한국기업의 경영풍토는 총체적인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우등생으로 칭송받던 한국경제가 패거리 자본주의쯤으로 폄하된 마당에 한국식 경영이 매도됐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지배구조를 비롯한 경영행태 전반에 걸쳐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초한 광범위한 개혁이 뒤따랐다. 가장 큰 변화라면 이제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더 이상 정경유착이나 대마불사신화와 같은 한국적 풍토에 의존하지 않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능력과 기법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팀이 승승장구하면서 '히딩크 경영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아침에 한국을 축구강국으로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은 영웅으로 대접받을 만하다. 한국 축구팀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다지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의 노력으로 당사자인 한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위업을 달성했다. 어떻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에 관심이 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히딩크 감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구체적인 요인은 차차 밝혀지겠지만 한국 축구팀을 세계적인 강팀으로 변모시킨 소위 '파워 프로그램'을 보면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축구팀의 책임자로서 축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뚜렷한 목표와 신념을 갖고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갖추기 위해 몇가지 기본적인 노력을 묵묵히 실천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우선 2시간을 거뜬히 뛸 수 있는 체력을 기른 것이 첫번째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스포츠에서는 누구나 체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막연히 의욕이나 분발ㆍ투지를 주문하기 보다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체력을 길러냈다는 것이 히딩크식 축구의 차별성으로 꼽힌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오로지 축구라는 관점에서 선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가능성을 파악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이다. 히딩크의 축구를 위한 파워 프로그램에서는 가령 그동안 한국 축구팀에 만연했다는 학연이나 선후배 중심의 관행과 팀문화 따위는 축구를 잘하는 데 걸림돌일 뿐이었다. 실력과 경기력 향상위주로 공정하게 팀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히 팀워크도 좋아지고 리더십도 먹혀들었다. 혁신이라면 혁신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히딩크 경영학'의 본질은 의외로 단순한 데 있을지 모른다는 인상도 준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변화를 통해 3류 축구팀을 단번에 세계 일류 축구팀으로 키워낸 히딩크 경영학은 '원칙경영'쯤으로 불릴지 모르겠다. 기업경영이든 국가경영이든 '기본과 원칙을 지키라'는 게 세계를 놀라게 한 히딩크 신화가 한국에 주는 교훈인 것 같다. 논설위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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