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조세환경개선 서둘러야

필자가 만난 많은 외국인투자자들은 대체로 한국의 조세환경이 싱가포르, 홍콩보다는 못하지만, 상하이보다는 낫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세율이나, 세부담과 같은 양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조세행정의 투명성, 예측가능성, 신뢰성 등과 같은 질적인 요인들까지 포함한 조세환경 전반에 대한 평가다. 그 동안 우리는 주로 세율이나, 세부담과 같은 양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한 투자환경개선에 관심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투자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들은 세율 못지 않게 일관성있고 투명하며 예측가능한 세무행정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외자유치를 통해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조세환경 전반을 국제수준에 맞추는 노력이 시급하다. 첫째 조세관련법령을 과세자가 아닌 납세자의 입장에서 좀 더 간소화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세목(稅目), 복잡한 과세체계, 수많은 예외조항 등으로 얽히고 설킨 우리 세법은 납세자에게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성실납세를 어렵게 하고 있다. 엄청나게 늘어난 조세관련규정과 예외조항 때문에 세무전문가조차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인데, 한국사정에 어두운 외국인투자가가 어떻게 한국의 조세체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수많은 예외규정으로 누더기가 된 세법체계를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맞춰 깔끔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세무행정의 일관성이다. 외환이 절실했던 지난 외환위기 당시와 1,2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오늘날을 비교하면 한국정부의 외자유치 의지가 희석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예를 들면 1998년에는 구주취득을 통한 외국인투자시 이중과세방지협약에 따라 한국에서 양도소득세 과세를 않기로 약속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경과조치도 없이 입장을 바꿔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겠다고 하고 있다. 당시 이 규정을 믿고 투자한 한 외국인투자가는 지금 한국정부의 자의적인 입장변화에 발을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조세피난처(tax haven)에서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관대하게 허용했지만, 이제 와서 당시투자에 문제는 없었는지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정부정책이 이렇게 오락가락해서야 어떤 외국투자가가 한국을 믿고 투자할 수 있을까. 당장 선진국이라도 된 듯 스스로를 과신하고 무모한 자아도취(complacency)에 빠진다면 한국이 또 다시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외신의 경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세무공무원의 법규해석과 적용이 자의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는 법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애매하게 돼있어 공무원의 재량권이 남용될 소지가 많은 탓도 있다. 담당공무원마다 법규해석이 제각각이고, 납세자 또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규를 해석한다. 여기에 담당공무원의 각종 감사 등을 의식한 보신주의까지 가세하여 법규를 지나치게 좁게 적용하는 경향마저 있어 세무행정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공무원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과세불복건에 대해서조차 행정심판을 통해 해결하라는 무책임과 무사안일이 공직사회에 만연해서는 외자유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세무행정 전반에 대한 시스템개혁과 함께, 세무관련 법규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조세문제는 아니지만 회비, 성금, 부담금 등 각종 준조세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명확한 징수근거가 없는 수수료, 부담금 등은 물론 가입하지도 않은 단체에서 각종 회비고지서가 수시로 날아들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630여개에 달하는 법정 준조세 때문에 발생하는 직접적인 부담과 함께 전담직원을 배치해야 하는 등 관리비용도 상당하다고 한다. 여기에는 그동안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설치한 각종 협회, 공단, 조합, 공단 등의 산하기관들이 각종 출연금, 회비, 수수료 등을 징수하여 운영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기업에 손을 벌리는 전근대적 관행이 시정되지 않고는 우리가 선진경제로 발돋움하기 힘들다.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의 조세행정 전반에 대해 신뢰하도록 만들려면 이러한 제도적인 개혁과 아울러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의식도 하루빨리 극복돼야 한다. 외국기업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마치 애국이라는 편협한 발상이 자리잡는 한 한국이 동북아의 비즈니스중심지로 부상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기업가의 국적에 관계없이 긴 안목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최적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투자환경개선의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김완순 외국인투자옴부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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