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박흥진의 할리우드통신] "어디서든 영화할 수 있지만 할리우드 친구들이 그립다"

연말 개봉 '대학살' 감독 로만 폴란스키

흰색 셔츠 위에 회색 상의를 입은 작달막한 키의 로만 폴란스키(78)는 나이답지 않게 젊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잿빛 머리와 장난기 어린 아이 같은 얼굴에 총명한 재주꾼의 눈을 가진한 폴란스키는 쾌활하고 유머와 위트가 있었는데 그것이 가끔 냉소적이어서 웃다가도 찌르는 듯한 감촉을 느끼게 된다. 올 연말 개봉될 '대학살(Carnage)'을 감독한 폴란스키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와의 인터뷰가 최근 파리의 호텔 플라자 아테네에서 열렸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잡고 인터뷰장으로 들어온 폴란스키는 세월을 달관한 듯 있는 것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으며 인터뷰를 즐겼다. 지난 1978년 할리우드 전성기 시절에 성 범죄 혐의로 기소된 후 선고 공판 직전에 파리로 피신한 폴란스키는 "요즘은 옛날과 달리 반드시 할리우드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 "하지만 할리우드의 친구들과 단골 델리집이 그립다"고 고백했다. 폴란스키는 "나는 일이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일뿐 결코 그것이 달라지기를 원치는 않는다"며 자신은 운명론자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내가 할리우드에 있었다면 내 생애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부언했다. 유대인인 폴란스키는 도망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아버지 고향인 폴란드로 이주했다. 이어 2차 대전이 나면서 그의 부모는 유대인 수용소에 감금돼 어머니는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그 후 어린 폴란스키는 크라코우의 게토를 탈출, 나치를 피해 도망자로 시골을 전전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가톨릭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다. 폴란스키가 지난 2003년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피아니스트'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그는 "그 영화는 내 왼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스키는 인터뷰에서 도망자로서 자신의 신세를 스스로 조롱하듯 농담을 했는데 "여러분들이 '대학살'로 내게 상을 줘도 난 할리우드에 가지 못하니 일찌감치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할리우드에 대한 그리움이 여운처럼 어른거리는 듯했다. 심리묘사에 뛰어난 폴란스키의 영화는 공포와 집념, 인간 마음의 탈선, 특히 성적 일탈 등을 자주 다루는데 자신의 첫 극영화 '물 속의 칼'과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혐오', 자신이 직접 주연한 '세입자' 및 할리우드 데뷔작 '로즈메리의 아기' 등이 모두 그런 영화들이다. 보는 사람의 심리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그의 소년 시절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폴란스키는 앞으로 젊음에 집착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시대극으로 만들 생각이라면서 "요즘 사람들이 성형수술과 화장품과 약으로 광적으로 젊어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반세기가 넘도록 영화를 만들 수있는 원동력은 새로운 것을 하고픈 도전정신"이라면서 "그러나 주제가 날 움직여야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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