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심층진단] 부양가족 관계없이 소득따라 공제… 빈곤층 가장 역차별

[구멍 난 근로자 면세제도] <br>같은 저소득층이라도 독신가구는 세금 안내<br>"근로소득공제 줄이고 인적공제 늘려야" 지적

서울 중구 청계천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차를 마시며 걷고 있다. 직장인들에게 과세 제도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지만 정작 근본인 면세제도는 심각하게 구멍이 나 있다. 서울경제DB


근대 이후 전세계 민주국가에서 확립된 과세원칙의 핵심 뼈대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것이다. 나라의 국민이라면 한 푼을 벌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국민개세주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소득세법 개정안의 방향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 원칙을 새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소득을 얻더라도 생계를 겨우 해결하고 나면 세금 낼 돈이 없는 계층은 어떻게 될까. 법학자들은 국민납세 의무를 명시한 헌법의 국민개세주의 원칙도 세금을 부담할 형편이 안 되는 계층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소득세를 면세해주는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최근 이 같은 면세원칙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족을 부양하는 근로소득자의 면세점이 최저생계비를 밑돌기 직전 수준에 이른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의 정의를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내리고 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밑돌면 빈곤층으로 분류되며 100~120% 수준으로 웃돌면 잠재적 빈곤층(차상위계층)으로 꼽힌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10년간의 소득세 면세점 자료를 확보해 분석해본 결과 차상위계층 근로 가장은 이미 최근 수년 사이에 면세점을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인 가구 근로자의 면세점은 지난 2005년 처음으로 120%를 밑돌아 112.7%를 기록한 데 이어 하락세를 타 2011년에는 106.0%로 떨어졌다. 차상위계층 중 상당수가 이미 지난 7년 새 소득세를 부과 받아온 것이다. 3가구 근로자와 2인 가구 면세점은 각각 4년 전(2008년)과 2년 전(2010년)부터 120%를 하회하고 있다.

현재 차상위계층까지 면세혜택을 받는 근로자는 독신 가구가 유일하다. 이들의 지난해 면세점은 최저생계비 대비 137.7%다. 정부는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걱정하면서 국민들에게 결혼과 출산, 노무모 봉양을 장려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을 부양하는 근로자가 역차별 받는 부조리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 같은 소득세 면세 왜곡은 어떤 이유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소득세의 감면구조가 인구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학계는 지적하고 있다. 소득세의 각종 감면제도 중 백미는 단연 '근로소득공제'인데 이 제도는 납세자 가구의 부양 가족 수에 관계 없이 오로지 납세자의 소득 수준이 얼마나 낮으냐를 기준으로 공제율을 높여준다. 쉽게 말해 지급 받는 봉급이 똑같다면 독신자이든 자녀나 부모, 배우자를 부양하는 가장이든 관계 없이 똑같은 근로소득공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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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소득 공제율을 납세자의 연간 총급여 구간별로 살펴보면 ▦500만원 이하 80% ▦500만원 초과~1,500만원 이하 50% ▦1,500만원 초과~3,000만원 이하 15% ▦3,000만원 초과~4,500만원 이하 10% ▦4,500만원 초과 5% 등이다.

물론 정부는 납세자가 함께 사는 식구(납세자 본인 포함)의 머릿수에 따라 별도로 공제를 해주는 '인적공제(기본공제, 추가공제, 다자녀 추가공제)' 제도를 소득세법에 명문화하고 최근 해당 공제액을 다소 늘림으로써 근로소득공제의 단점을 일부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납세자가 인적공제로 느끼는 실제 세금 감면폭은 그리 크지 않다. 소득공제는 최종 산출세액에서 세금을 빼주는 게 아니라 세율을 적용하기 전의 소득에서 금액을 감해주는 것인데 저소득층은 소득세율 자체가 낮아 소득공제를 해도 실제 감세금액은 미미하다.

인적공제 중 그나마도 개별 항목별 공제폭이 가장 큰 것은 셋째 자녀부터 1명당 200만원씩으로 더 감해주는 등의 다자녀 추가공제 제도인데 요즘의 높은 보육ㆍ교육비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차상위계층이나 절대빈곤층이 소득공제 조금 더 받겠다고 자녀를 둘 이상 낳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근로소득공제의 전체 규모를 줄이되 상대적으로 인적공제를 강화해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요즘 아이 한 명 키우는 1년 교육 비용을 감안한다면 자녀 한 명당 150만~200만원씩의 소득공제만으로는 납세자가 감면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며 "차라리 근로소득공제의 전체 폭을 줄여 절감되는 세수만큼 인적공제를 늘리는 것도 정부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아예 미국식 제도를 채택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개인 별산으로 이뤄지는데 미국처럼 부부합산 소득으로 과세하고 독신자 등의 개인 소득으로 잡힐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을 매겨 그만큼 확보되는 세수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들의 세부담을 줄여주자는 의견이다.

정부는 다만 면세제도를 단기간에 수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소득세의 기본적인 골격을 바꾸는 것은 큰 작업인 만큼 정권 말에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신중론을 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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