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독서] 전경린 소설 '내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불륜은 질서를 깨는 의식의 하나이다. 많은 작가들이 불륜의 드라마를 사랑한다. 작가 전경린의 고백을 들으면 이렇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되어 기녑비가 되는 사랑보다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비합리적인 사랑에 매혹되었다』고. 그래서 엉뚱한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 이름하여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이다. 일정기간 동안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누되,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쪽이 지는 게임, 서로 약속한 기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어지는 게임이다.전경린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문학동네 펴냄)에 등장하는 두 남녀는 이런 게임을 한번 해보자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애 하나가 딸린 유부녀였다. 아이 때문에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고백은 이 세상의 많은 기혼 남녀들이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때문에 불륜은 마치 일상이라는 비디오 테이프에 가위질을 하듯 제법 그럴싸한 일탈의 묘미를 안겨주기도 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미흔은 남편의 외도로 정상의 길에서 한참 비켜선 신세가 된 여인이다. 어느날 문득 찾아온 앳된 여인이 남편 앞에서 그들의 불륜을 고백하다니. 마치 주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적 속에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 푹 빠져있던 한 아이의 엄마 미흔이 새삼 자신의 존재를 되새겨 볼 기회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미흔의 고백을 듣자면 그녀의 존재는 어린이 놀이터처럼 안정감 있고, 단순한 것이었다. 『나는 유순하고 조용했고 어릴 때부터 청결했고 사람들이 여리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야릇한 연약함이 있었다. 나는 머리를 눈에 띄게 기른 적도 없었고 손톱에 에나멜을 칠한 적도 없었고 너무 짧은 스커트를 입은 적도 없었다. 친구도 늘 한 명 뿐이었다.』 적요(寂寥)와 우수에 갖혀있던 미흔이 시골에 터를 옴겼다. 정신적 질환이 깊어진 탓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안정을 원했다. 시골의 소와 닭의 울음소리, 잎사귀가 바람과 비를 맞으며 내는 소리, 달빛 속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나뭇닢 태운 연기가 미흔의 일탈을 잡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미흔은 사설 우체국장 규를 만난다.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제안한 남자이다. 남자의 제안은 불륜을 의미한 것이지만 미흔이 그것이 자기 안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또 하나의 미흔을 끄집어낼지 모른다는 예감에 빠진다. 도시의 숨막힐듯한 일상 속이나 시골의 이완된 공간 속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내 안의 나」를 불러내는 데는 남편 아닌 다른 남자의 희한한 굿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경린의 소설은 매우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곳에는 남녀 주역들의 일탈된 러브 스토리가 주요 동력을 제공하지만, 은근하면서도 반복되는 질문이 던져진다. 인공을 벗어던진 야생의 삶이 그것이다. 전경린은 미흔의 탈을 쓰고 또 하나의 삶을 연출한다. 그녀의 고백 그대로 「거듭되고 표절되는 진부한 삶의 궤도를 이탈해 돌연한 변이를 보여주는 섬광같은 이야기」에 항상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염소를 모는 여자」,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등에서 범상치 않은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전경린의 새로운 러브 스토리는 하나의 비극이지만 굼뜬 인생을 각성시키는 묘약이었음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이용웅기자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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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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