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대선공약대로 322만명 모두 구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이 1년 이상 빚을 갚지 않은 장기연체자 실태파악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1호 공약인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자를 추려내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새 정부는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최대한 18조원 규모의 기금발족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지만 지원 대상이나 규모 같은 세부기준은 오리무중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기금운용의 3대 원칙을 제시한 게 현재로서는 전부다. 장기 채무자 및 학자금 대출자의 재무 재조정, 고금리 대출의 저금리 전환이 그것이다.


다만 3개월 미만 단기채무자에 대해서는 기존의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개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공약집에 수혜 대상자를 322만명으로 적시하다 보니 단기채무자까지 구제된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기승을 부렸던 탓이다. 1년 이상 장기연체자가 50만명 수준이니 그런 억측이 나돈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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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덕적 해이는 빚 부담 경감을 겨냥한 기금의 성격상 그렇기도 하지만 322만명 구제라는 공약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확대 재생산된 측면도 컸다. 세부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금융당국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공약에 적시된 구제 대상 숫자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재원조달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18조원으로 322만명을 구제한다는 계획은 과욕에 가깝다. 1인당 평균 지원액을 따져보면 559만원에 불과한데 누구 코에 불일까 싶다. 그렇다고 재원을 마냥 늘릴 수도 없으니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국민행복기금은 지원 대상을 누구로 하든 형평성 시비와 도덕적 해이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기왕의 대책이라면 예상되는 부작용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선택과 집중도 긴요한 과제다. 수혜자 선정 때는 연체기간의 장단이 아니라 빚을 상환하려는 자활의지를 더 중요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정책효과를 거두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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