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관제(獵官制)란 게 있다. 선거에 이긴 정당이 당원에 관직을 나눠주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승만(李承晩)정권 시절 독버섯처럼 퍼졌던 엽관주의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고위층 인사때면 늘상 되풀이 돼왔다. 관직뿐 아니다. 직책에 공적(公的) 냄새가 풍길라치면 집권당의 「자리내리기」는 당연시됐던게 한국적 현실이다.구조조정의 끝자락, 마지막 남은 합병은행인 조흥은행의 수장 자리를 놓고 말들이 무성하다. 막바지에 이른 최근에는 3~4명으로 압축된 분위기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의 행장 자리가 뽑을때마다 거론되는 인물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끼어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행장으로 결격만 없다면 수십번 후보에 오른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왜 유력한가」에 대한 해석에 들어서다. 불행히도 일부 후보 뒤에는 항상 『누구는 어디출신으로 어느 정당이 민다』는 꼬리표가 따라붙곤 한다. 정당의 영향력이 직간접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이쯤되면 능력따윈 온데간데 없다. 「부실에 책임있는 임원」이라는 불명예 딱지도 자취를 감춘다. 실제로 우여곡절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행장에 등극하는 영광을 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능력에 의해서건, 지역연고에 따른 정치권의 도움에 의한 것이든.
조흥은행의 유력후보중에는 그와 함께 슈퍼뱅크를 만들었던 인물도 포함돼 있다. 금융계에서 풀이하는 해석법은 그가 「충청권 인사」이기 때문이라는 것. 충북은행과의 합병에 덧붙여 자민련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라는 추정에서다. 능력에 관한 얘기는 그다지 찾을 수 없다.
또다른 유력후보도 상황은 비슷하다. 호남권 인사로 국민회의의 배려가 있을 것이라는게 금융계 입담이다. 후보간의 능력 우위 얘기는 거의 없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오랜 세월만에 정권을 잡아 자신의 지역 출신을 「요직」에 앉히겠다는 심리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피같은 국민세금을 들여 살린 은행에 좀더 순수한 배경에서, 깨끗한 사람으로 새출발하는 은행의 모습을 보길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YG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