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누가 누구한테 고함치는 겁니까

"공부 좀 하고 얘기하십시오. 말씀 조심하십시오!" 15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법안심사소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핏대를 세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소위에서 부결된 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과 말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김 본부장은 끝내 폭발했다. 잘못된 번역문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해 끝내 일이 엉망진창이 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모습이었다. 이날 국회는 2년 전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해머 국회'와는 차원이 다른 우리 정부의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한ㆍ미 FTA 비준동의안을 준비했던 당시, 아무리 야당 의원이 해머로 문을 부수고 책상 위에서 '공중부양'을 했어도 정부는 강한 의지로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해 삿대질을 했지만 FTA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가장 큰 책임은 결국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에 있다. 무려 200곳이 넘는 잘못된 오역으로 한ㆍEU FTA 비준동의안은 국회에서 무려 두 번 철회되고 세 번 제출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FTA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는커녕 무리하게 비준통과를 밀어붙이다가 여당 의원이 표결을 기권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무능, 제 할 말만 하는 국회의원, 갈등조정을 포기한 정치권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다. 한ㆍEU FTA가 7월에 발효될 것이라는 말만 믿고 수출길을 닦을 준비를 하던 기업들은 난장판이 된 국회와 정부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통과됐어야 할 한ㆍ미 FTA 비준동의안은 국회에 언제 상정될지조차 알 수 없는, 기약 없는 조약으로 전락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관통하는 몇 안 되는 정책 중 하나가 적극적인 FTA 추진이다.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많이 FTA를 체결해 자유무역의 선진국이 되겠다고 내세웠다. 그 결과물은 세계에서 FTA로 가장 갈등을 많이 조장하고 오역투성이 번역문을 만든 무능함이다. '수조원의 경제효과와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FTA'를 우리 정부는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지금 김 본부장이 국회의원에게 핏대 세우고 소리지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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