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8월 19일] '명품'과 '짝퉁'

물가가 다락같이 오르고 있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워낙 높은 탓에 물가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물가상승 압력이 가장 높다고 한다. 물가상승 압력은 생산자물가에서 소비자물가를 뺀 수치다. 이 수치가 클수록 앞으로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도 높다. 좋지 못한 것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1등을 차지한다니 입맛이 씁쓸하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우리가 싼 것도 많다. 의료비, 전기 및 수도 요금, 통화료 등이 대표적이다. 보험료도 저렴하다. 미국에 가면 비싼 보험료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의료보험이건 자동차보험이건 우리나라보다 보험료가 훨씬 비싸다. 10년 전이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최소한 세 배 이상 비쌌던 것 같다. 비싸다고 해서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정전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이따금 정전으로 촛불을 밝혀 놓을 때는 “전기 요금은 그렇게 많이 받아 먹으면서…”라며 푸념을 늘어놓은 적도 많다. 보험은 달랐다. 교통사고를 당해 보니 보험상품에 대해 만족할 수 있었다. 빗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바람에 전조등이 깨지고 엔진 덮개 부분이 찌그러졌다. 이른 아침이라 목격자도 없었다. 어쨌든 수리비를 처리하기 위해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보험회사 직원은 먼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를 당했느냐”고 물어봤다. 간략하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자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없느냐”라고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목격자가 없다”고 답하자 질문은 끝났다. 직원은 즉시 지정 수리센터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보험처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싸지만 좋은 보험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로 무거워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기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컸다. ‘짧은 영어 실력에 사고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매끄러운 대답을 위한 예행연습까지 여러 차례 반복했다. 결과적으로는 기우였다. 이런 걱정은 국내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당수 사람들이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보험금을 청구할 때는 ‘잠재적인 보험 사기범’ 취급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또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보험금을 받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례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버보험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높다. 실버보험은 대부분 무고지ㆍ무심사 보험이다. 가입자가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릴 필요도 없고 보험사도 가입자의 건강상태를 심사하지 않는다. 광고를 통해 ‘누구나 가입’ ‘건강 검진 없이’ 등과 같은 문구를 제시하는 한편 ‘보험료가 싸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치 보험사기를 방치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보험은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에 따른 경제적 피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든 금융 상품이다. 우발적인 사고라도 위험률(사고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해일 같은 천재지변에 따른 손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상품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보험상품이 나오면 소비자는 좋겠지만 보험사는 막대한 보험금 때문에 이내 망하고 만다. ‘광고 문구’ 대로라면 보험사들은 실버보험 판매를 통해 손해를 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장 범위가 제한적인 탓에 보험금을 타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로 지급되는 보험금이 푼돈에 불과하다. 보험이라는 이름을 내걸었을 뿐 ‘유사품’일 뿐이다. 보험사들에 이런 문제를 따지면 으레 “가격 경쟁이 치열해서…”라는 답이 나온다. 가격이 싼 것만을 찾는 소비자들 때문에 ‘명품’이 아닌 ‘짝퉁’을 공급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소비자들의 몫이다. 제대로 된 보험상품을 보다 싼 값에 공급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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