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지속적인 상승을 확신하며 물가압박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콜금리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한국은행이 유가 폭등이라는 돌발악재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동위기에 의한 유가 폭등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대세로 굳어질 경우 한은이예측한 올해 5% 성장률 달성이 무산되는 것은 물론 콜금리 추가 인상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이성태 한은 총재가 콜금리 추가 인상의 필요성을 연일 강조해온 상황에서콜금리 인상을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경우 이 총재의 리더십에 타격이 초래될 수 있어한은으로서는 유가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16일 한은과 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서부텍사스중질유는 8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100달러까지 갈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대한상공회의소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으면 국내 기업 10군데 가운데 6군데는 조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유가급등은 곧 바로 국내총생산(GDP)을 위축시키고 경상수지 악화와 내수침체를초래하기 때문에 콜금리 인상 주장을 펴온 한은 집행부에게는 일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한은은 올해 GDP 성장률을 5.0%로 내다보면서 전망의 전제로 원유도입단가를 배럴당 63달러로 잡았다.
원.달러환율이 안정되고 국제유가가 더 이상 급등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5% 성장률을 점쳤으나 최근의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편이다.
상반기중 원유도입단가는 배럴당 61.1달러를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따져 하반기에 배럴당 65달러를 초과하지 않는 한 한은의 예측이 빗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7월 한달만 따져볼 때 60달러 중반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한은 관계자는 "만약 유가 폭등세가 연말까지 계속된다면 5% 성장은 물 건너 가는 셈"이라면서 "문제는 5% 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하반기에 성장속도의 일시적 둔화에 이어 내년 상반기 성장기조의 회복이라는 전망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될 경우 콜금리 추가인상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경기부양을 위해 콜금리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유가급등이 물가상승 압박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선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콜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으나 모처럼만에 회복세에들어선 내수경기가 냉각된다면 물가보다는 경기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유가급등이라는 변수는 7명의 금융통화위원들이 콜금리 조정 결정을 내릴 때 다른 어떤 변수들보다도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는 것이 그간의 금통위 의사록에서 확인된다.
지난 5월의 금통위에서는 사전에 한은 집행부가 콜금리 인상 가능성을 염두고 시나리오를 준비했으나 유가와 환율이 불안한 양상을 보임에 따라 콜금리 동결 결정이 내려졌으며 당초 한은이 준비한 시나리오는 6월 회의때 콜금리 인상 결정에 활용됐다는 후문이다.
7월 금통위때는 갑자기 터진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위기로 콜금리 동결론이 압승을 거둔 형국이 됐다.
따라서 현재의 유가불안 양상이 다음달초까지 이어진다면 8월 금통위에서 콜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은 집행부는 이러한 외부 악재로 인해 경기회복세가 주춤하는 상황이 초래될 경우 8월 이후에도 콜금리 추가 인상을 시도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그동안 이 총재가 "물가 문제에 관한 한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는 표현 등으로 물가상승 압박을 경고하면서 선제적 콜금리 인상 방침을 두루 역설해온 상황에서 외부 악재로 정작 콜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될 경우 중앙은행 총재의 신뢰도에 흠집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콜금리 인상 의지를 한껏 과시했다가 정작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가급등은 한은으로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으면 정책결정도 달라져야 한다"는 논리로 국면을 돌파할 수도 있다.
또 일부 한은 관계자들은 "그동안 이 총재의 발언은 기존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일 뿐인데도 언론이 총재의 발언중 특정부분에만 방점을 찍어가며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언론쪽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심 `후유증'을 걱정하는 표정은 숨기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