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협과 양심의 문학가, 솔제니친 잠들다 노벨 문학상 수상 '러 최고 예술가' 향년 89세로 타계 강동호 기자 eastern@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비타협과 억압에 대항하며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렸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사진)이 3일 90세를 일기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인테르팍스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은 솔제니친이 이날 오후11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구소련 체제에 대한 저항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신념.' 삶과 문학이 이처럼 요약되는 극작가이자 역사가였던 솔제니친은 지난 1918년 카프카스의 키슬로보츠크시의 한 지식인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교양 있는 어머니의 교육으로 그는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떴다. 대학 졸업 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45년 동프로이센에 근무할 당시 친구에게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 것이 적발돼 1945년 투옥, 8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때가 그의 저항정신과 문학의 시발점이 됐다. 그의 데뷔작은 1962년 문학지 노비미르지에 발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노비미르 편집장은 작가의 수감시절 겪었던 시련을 바탕으로 한 이 원고의 출판 여부를 결정하지 못해 공산당 총서기였던 흐루시초프에게 보여줬는데 흐루시초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출판을 지지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취임한 후 문화활동의 이념적 규제가 심해지면서 그는 반체제 인사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당국의 탄압이 점점 심해져 작품 활동에 방해를 받게 되면서 더 이상 소련에서는 공식적으로 출판이 어려워지자 결국 그는 국외에서 활동을 전개해나간다. 1969년에는 급기야 옛 소련 작가 동맹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68년작 '암병동'을 비롯한 '제1원' 등 주요 작품들은 해외에서 먼저 출간됐다. 1967년 비밀리에 집필한 '수용소 군도'로 그는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만 이 작품으로 그는 소련에서 반역죄로 몰려 체포돼 이듬해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후 독일ㆍ스위스ㆍ미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 2부와 3부를 펴내는 등 꾸준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그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간 것은 추방당한 지 16년이 지난 1990년. 이후 그는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체제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솔제니친에게 러시아 예술가들의 최고 명예로 꼽히는 국가공로상을 수여한 뒤 거동이 불편해 수상식에 불참한 그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오는 2010년 완간될 예정이었던 그의 작품 전집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가 보여준 저항정신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군부독재 시절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의 문학은 널리 읽히며 저항정신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