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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71> 이촌동 새남터


조선사회에 로마가톨릭이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때다. 왜군의 주력부대를 지휘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톨릭 신자로서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전투를 벌였다. 스페인 출신으로 당시 일본에 와 있던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 신부가 지난 1593년 국내에 들어와 1년을 머물기도 했다. 일본에서의 전파는 전쟁 과정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조선후기부터는 청나라가 통로가 됐다. 1783년(정조 7년) 베이징에 갔던 이승훈이 최초로 세례를 받았고 박해사건도 시작됐다. 1791년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고 가톨릭식 제례를 지냈다는 죄명으로 윤지충 등이 처형됐다. 점차 박해는 치열해졌다.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함께 이승훈·정약종(정약용의 형) 등이 1801년(순조 1년) 새남터에서 처형됐다. 새남터가 지금은 사진처럼 가톨릭교회가 서 있지만 순교지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지금의 이촌동 새남터는 조선 초부터 군사훈련장으로, 후에는 중죄인들의 사형장으로 이용됐다. 세조 때 사육신도 여기서 사형을 당했다.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가톨릭교도 처형장으로 사용됐다. 서소문이 평신도의 순교지였다면 새남터는 주로 사제들이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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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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