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경제민주화는 여권의 자충수


지난 4ㆍ11 총선에서는 복지 논쟁이 최대 승부처였다. 처칠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도 예상을 뒤엎고 종전 직전의 총선에서 패배해 노동당의 애틀리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도 전쟁 말기에 발간한 베버리지 보고서가 촉발한 복지 논쟁 때문이었다. 그만큼 복지 논쟁은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주제다. 지난 총선 말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와 제주해군기지 폐지, 막말의 '나는 꼼수다'와 종북 진보인사의 막무가내 공천 등 야당의 오만이 없었다면 무상보육ㆍ무상급식ㆍ무상의료ㆍ반값등록금 등 '3무1반' 복지정책을 내세운 야당을 여당이 이길 수 있었을까. 힘들었을 것이다.

성장 없는 복지 논쟁땐 우파 수세 몰려


놀란 여당은 유럽 재정 위기를 보고도 총선 후 되레 앞장서서 무상보육을 확대 시행하고 아침 무상급식까지 주장하는 등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야권은 이번에는 복지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으로 어떤 정책을 담을 것인지 아직은 오리무중이지만 주장하는 정책들을 보면 '재벌 때리기'가 중심이고 부자증세도 가세하는 모습이다. 야권은 정치권력을 독재자로부터 국민에게로 환원한 정치민주화처럼 소수 재벌과 부자가 독식한 경제 성장의 과실도 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민주화를 실현한 1987년 체제에 이어 경제민주화의 2013년 체제를 달성함으로써 민주화의 완결판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단한 파괴력이 아닐 수 없다. 여당도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정책으로 채택하고 여당 의원들마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발족시키고 있다. 경제민주화 담론 경쟁에서 밀리면 마치 끝장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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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포퓰리즘이 남유럽 재정 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과도한 복지는 다음 세대의 소득을 당겨쓰는 위험천만한 포퓰리즘이며, 재벌 때리기 경제민주화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나눠가질 과실은커녕 오히려 일자리를 줄여 서민들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주장의 합리성은 포퓰리즘의 선동성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거대담론에서 밀리면 정권이 끝장날지도 모를 판국에 선진국 도약과 같은 국가의 장기 비전과 청사진 따위가 설 땅은 없다.

한국 사회에는 이미 국가 발전의 장기전략 같은 원대한 미래 설계보다는 당장 달콤한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거대담론의 홍수가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누가 더 좌파적이냐가 관건이다. 이미 정통 보수정당은 사라졌다는 진단마저도 나온다. 이런 형국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세력은 좌파 야권일 수밖에 없다. 원래 우파였던 여권이 좌클릭하면서 오십 보 백 보 차이로 주장해봤자 진정성만 의심받으면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수세에 몰리는 전략으로 과연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지난 총선 때처럼 다시 야권이 엄청난 실수라도 저지르기를 기대해야 할까. 야권도 총선 때 공부 많이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권이 주장하는 복지나 경제민주화는 여권의 승부수가 되기보다는 위험한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된다.

일하는 복지 비전 강화로 정면돌파 해야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나갈 것인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단기적인 안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다수 국민을 탓할 수도 없다. 실존철학자 데카르트는 개인은 이기적인 존재인데 그 이기성의 발로가 국가 전체의 선(善)으로 연결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의 일이라고 했다.

일자리 없어 방황하는 청년들과 퇴직 후 오갈 데 없는 장년의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일하는 복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소득 불평등은 교정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경제민주화라고 정면돌파하는 것이 나을지, 계속 좌클릭하면서 야권과 경제민주화 경쟁을 벌이는 것이 나을지, 선동성에 중독되고 도덕 해이에 불감증이 된 유권자들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국가와 국민을 구하고 선거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인가가 대선을 앞둔 여권의 진정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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