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이하 외통부)가 미측의 낮은 수준의 개방안에도 불구하고 협상 중단을 우려, 강공책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통부는 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압박을 주장한 재정경제부ㆍ산업자원부와 극심한 마찰을 빚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상품 분야 3차 협상 지침(훈령안)은 외통부의 입장이 관철됐지만 시한에 쫓겨 대미 협상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게 됐다. 지난 8월30일 오전 비공개로 개최된 FTA추진위원회(위원장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문건에 따르면 외교통상부는 미측이 섬유뿐 아니라 철강ㆍ가전 등 농산물을 제외한 모든 상품에 대해 극히 낮은 개방안(양허안)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3차 협상 대응방향으로 우리측 개방요구안을 먼저 제시할 것을 주장했다. 외통부는 또 “미측 양허안과 우리측 요구안을 놓고 3차 협상에서 줄다리기를 벌인 뒤 4차 협상 전까지 미측이 수정 양허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하자”고 했다. 반면 1차 양허안이라 하더라도 도를 넘어선 수준이라고 판단한 산자부는 3차 협상에서 우리측 개방요구안을 제시하지 않고 미측에 수정양허안을 요구하는 쪽으로 협상전략을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미측 태도가 너무 불성실하다는 국내 산업계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양 부서의 대립이 심해지자 정보통신부와 농림부ㆍ해양수산부는 외통부를 거들고 재정경제부는 산자부 안에 동의하며 외통부 안에 강한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막판 재경부의 반대가 누그러지면서 산자부는 외톨이가 됐고 외통부 안이 3차 협상 지침으로 결정됐다.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도 “3차 상품협상에서 우리측 개방요구안을 먼저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측 시한에 쫓겨 우리가 너무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전망이다. 실제 협상에 정통한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협상지침은 외통부가 산자부 안에 대해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고 이로 인해 협상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같은 사실은 당시 개최된 FTA추진위원회 회의록이나 관련 문서를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외통부 측은 “1차 양허안이 교환되면 상대방은 개방요구안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미리부터 저자세로 나간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일FTA 협상에서도 일본측이 1차로 농산물 분야에서 매우 낮은 수준의 개방안을 제시하자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우리측이 일본에 “먼저 수정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어서 외통부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미측의 극히 낮은 상품개방안을 접한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시한에 이끌려 내용을 양보하진 않겠다’고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협정 체결에 급급해 알아서 미국의 입맛에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