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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 어버이 날에 부모님께 선물하고,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놀러 가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막상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은 없었다.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나와 어떤 관계일까?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가 창궐(?)하는 이때, 잠시 잊었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한국영화 두 편이 찾아왔다. 한편은 ‘콩가루 가족’의 이야기, 또 한편은 흔하디 흔한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하지만 두 편 모두 가족에 대한 깊은 통찰과 뭉클한 감동이 담겨있다. 할리우드의 시원한 액션을 느끼는 영화관람도 좋겠지만 이번엔 온 가족이 함께 보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가정의 달이 다 가버리기 전에. '가족의 탄생'
노처녀·20살 연상녀와 사귀는 동생 등 '유사가족' 의 기묘한 이야기
가끔 한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가족들을 보며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슨 인연이 있길래 이 풍진 세상에서 이들은 나를 감싸주고 지켜주는 것일까. 핏줄?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가족이라는 말 속에는 핏줄보다 더 뜨거운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선보인 바 있었던 김태용 감독은 6년만의 신작 ‘가족의 탄생’에서 이 가족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한다. 핏줄 말고 또 무엇이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일까? 이를 위해 감독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유사가족을 창조한다. 이 유사가족이 만들어지고 확대돼 가는 이야기가 영화 ‘가족의 탄생’이다. 그 가족탄생의 내용은 이렇다. 억척스럽지만 소심한 노처녀 미라(문소리)에게 오래 전 집 나간 동생 형철(엄태웅)이 돌아온다. 20살 연상의 애인 무신(고두심)을 데리고. 무신에게는 피한방울 안 섞인 딸 채연(정유미)가 있다. 이 때부터 미라, 무신, 채연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의 또 한편에선 선경(공효진)과 역시 배다른 남매 경석(봉태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20년이란 세월을 넘나들며 미라, 무신, 채연, 선경, 경석이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족형성의 과정에서 서로 싸우고 오해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살아온 환경의 차이만큼 그들은 불신하고 그만큼 속마음을 내비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어느새 이해와 사랑이 싹트고 그들은 가족이 된다. 채연은 미라, 무신 두 명을 모두 ‘엄마’라 부르고, 경석과 선경은 살가운 남매가 된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들이 어느새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오직 사랑과 이해만으로. 감독은 이 영화를 한 라디오 사연에서 착안해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 섬세한 살을 붙인 것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실제 배우의 성격을 염두해 두고 창조해냈다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생동감이 넘친다. 고두심, 문소리, 공효진, 봉태규 등 연기력 출중한 배우들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호로비츠를 위하여'
어느덧 엄마와 아들이 되어버린 피아노 선생님과 제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동화되는 과정이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낯선 두 사람이 만나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나가게 되고 끝내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가 된다. 부부관계, 부모-자식 관계, 스승-제자 관계 등 모두가 이 경이로움의 산물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지수(엄정화)와 경민(신의재)도 처음엔 낯설게 만난다. 일류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콤플렉스를 가진 노처녀 피아노강사 지수가 어느날 미치광이 할머니 손에 자라는 부모 없는 아이 경민을 만난다. 경민은 웬일인지 지수의 피아노 학원을 뱅뱅 돌며 말썽을 부린다. 그러다 지수는 경민이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개인적 성공을 위해 경민을 제자로 받아들여 음악 트레이닝을 시킨다. 영화 초반 지수와 경민의 관계는 그저 말썽꾸러기와 이 아이를 잡으려는 동네주민의 관계일 뿐이다. 그러다가 이들 간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어느 새 이들은 ‘스승-제자’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둘 간에 스승과 제자 이상의 이해와 사랑이 싹트고 어느새 둘은 ‘가족’이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두 사람이 이별할 때 경민이 지수에게 매달려 “엄마”라 부르며 울부짖는 장면이나 먼 훗날의 재회에서 성공한 경민을 지수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들은 온전히 ‘모자간의 뜨거운 사랑’이 흐르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지수와 경민이라는 유사가족 탄생의 이야기를 때론 담담하게 때론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여기에 지수를 짝사랑하는 피자가게 사장 광호(박용우)의 순정도 가미돼 영화를 좀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젠 영화 한편을 충분히 혼자 끌고 갈만한 배우가 된 엄정화와 막 전성기에 접어든 박용우의 연기는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 한다. 음악을 소재로 한 것답게 영화 속엔 좋은 선율도 가득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쇼팽의 '강아지 왈츠',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바하의 '인벤션' 등 우리 귀에 익숙한 피아노 곡들과 이병우의 서정적인 기타음악이 만나 영화의 감동을 배가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