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명분·실리 모두 잃은 FRB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맞서지 말라는 월가의 격언이 있다. FRB의 정책의도를 거스르다간 십중팔구 손해를 보기 때문에 중앙은행에 순응하라는 의미다. 그래서 월가 트레이더들이 FRB의장의 발언 한마디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FRB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게 월가의 생리다. 그런데 최근 금융시장은 FRB의 의도와 거꾸로 가는 ‘역주행’이 잦아졌다. 올들어 두 번의 금리 인하와 수차례에 걸친 긴급 유동성 공급 방침을 발표한 당일 뉴욕증시는 오히려 떨어지기까지 했다. FRB의 잇단 개입을 시장은 신용위기 확산으로 해석하고 있다. 시장이 FRB에 순응하기는커녕 번번히 맞서 판정승까지 거두는 형국이다. FRB가 시장에 너무 끌려 다닌다는 비판이 나오자 미 언론들은 급기야 “FRB를 너무 협박하지 마라”고 충고까지 한다. 미국 시간으로 일요일이던 지난 16일 밤 FRB는 재할인율을 0.25% 인하하고 투자은행에게도 대출창구를 여는 획기적인 시장안정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얼마나 급했으면 저렇게 할까”라며 불안에 떨었다. FRB는 지난해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폭발한 뒤 신용경색 진행 강도에 따라 처방 수위를 높여왔다. 금리인하폭은 갈수록 커졌고 긴급 유동성 공급은 규모는 물론 지원 대상까지 늘려왔다. 그러나 시장이 FRB 정책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사이 신용경색의 중증은 안으로 더 곪아갔다. 금리인하로 달러약세는 지구촌에 인플레이션 재앙을 부르고 있다. 이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FRB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초기에 과감한 선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이유가 도덕적해이를 우려한 것인지 아니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더 큰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베어스턴스에 3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한 FRB는 지금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의 전쟁 초기에 도덕적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무릅쓰더라도 대규모 정밀타격을 가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FRB가 명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사태를 오판하는 동안 미국의 부실과 무관한 이머징마켓의 고통이 너무나 커지고 글로벌 인플레도 더욱 부풀려지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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