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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조립라인과 수출 항구, 성조기가 잇달아 화면에 등장하더니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나지막한 독백이 이어진다. "미국은 한 방에 나가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힘을 합쳤고 디트로이트는 다시 싸우고 있다."
얼마 전 열린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에서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가 전 세계 1억명이 넘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내보낸 광고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자동차산업의 부활을 역설하며 후반전부터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다시 뛰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금융자본 폐해로 전통산업 강점 돋보여
요즘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필두로 제조업이 살아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때 파산 위기에 몰렸던 GM이 글로벌 1위 자리를 탈환하고 제조업 고용도 모처럼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제조업 육성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는 곳마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역설하며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정책적 지원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 등을 떠나 U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해외 생산기지와의 경쟁력 격차가 좁혀진 탓도 있지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의식한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최대 제조업체인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항공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참전용사를 고용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제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의 폐해와 부의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면서 전통산업의 강점이 새삼 돋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 감소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중산층의 공동화 현상을 촉진시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제조업은 그 특성상 부가가치가 높고 생산성이 뛰어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안전망 구축에 든든한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서비스 분야의 평균 임금수준은 제조업에 비해 훨씬 낮다 보니 각국마다 질 높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이 차지하는 생산비중이 28%에 달할 만큼 독일ㆍ일본 등에 이어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국가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사회 전반적으로 제조업을 하찮게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심지어 중소기업들은 산업현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물론 제조업의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경제 성장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서비스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제조업의 고용 창출능력이 떨어졌다고 탓하기 앞서 노동 유연성을 부여하는 등 정책적 배려만 뒷받침된다면 추가로 인력을 채용할 여력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구로 디지털단지의 저력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잊혀졌던 구로공단은 현재 1만여개 입주사 가운데 절반가량이 제조업체로 이뤄져 있으며 고용 창출효과도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앞선 산업기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기존 제조업이 정보기술(IT)과 연계됨으로써 일자리도 만들고 미래 성장동력까지 확보하게 된 셈이다.
차별화된 모델로 신성장동력 만들어야
따라서 제조업도 과거의 명성에만 매달리기보다는 제조업 자체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차별화된 모델을 만드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최근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함으로써 숙원 사업인 제조업에 뛰어든 것이나 삼성전자가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을 떼내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것도 하나같이 미래 성장을 위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보여진다. 여기다 미국 등 세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의 장이 펼쳐진다면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의 위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과감하게 사업 모델을 개편한 기업들은 여전히 경쟁사를 압도하며 세계 시장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 국내 간판 기업들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장서 헤쳐나온 것처럼 한국 제조업의 선전을 위해 모두의 격려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