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다.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안정환의 골든골이 터지는 순간 한국과 이탈리아도 그랬다. 한쪽은 감격의 도가니였지만 다른 한쪽은 비탄에 잠겼다. 로마의 탄식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지중해의 태양을 받은 열정과 축구에 관한 남다른 사랑을 지닌 이탈리아 사람들의 쓰라린 가슴이 오죽하랴. 하지만 그들을 수긍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이탈리아 주요 신문의 머릿기사는 '심판의 편파 판정' 일색이다. 심지어 안정환의 소속 구단주가 한국과 안 선수를 원색적으로 비하했다는 외신까지 들린다.
이쯤되면 축구사랑을 넘어 '비뚤어진 자존심과 광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의 반응은 '추악함'을 넘어 '가련함'을 느끼게 한다.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승자의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16강전은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고 감격스럽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이 일그러진다. 궁색한 변명과 억지의 이탈리아에서 엿보이는 한국의 모습 때문이다.
같은 반도인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거나 대륙의 중원을 넘보다 약소국으로 전락했던 역사도 비슷하다.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의 지역간 갈등, 조급한 성격에도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반대의 상황을 상정해보자. 로마나 피렌체에서 벌어진 월드컵 16강 전에서 우리가 역전패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탈리아와 다를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십중팔구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게다.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네 탓'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인가. 따지고 보면 버스에 올라타 태극기를 흔드는 열광과 이탈리아의 '못난 질시'도 정도와 환경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똑 같은 것이다.
한국팀도 언제가는 질 수 있다. 승리의 감격과 축제의 분위기에서 우리는 온 국민의 합심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절감했다. 돈으로는 셈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얻었다. 자랑스럽고 위대한 우리에게 남은 일은 패배하더라도 승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좋은 반면교사다.
권홍우<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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