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9.11 테러 1년과 미래

1914년 8월을 전후로 유럽 및 세계의 미래는 급변했다. 1차 세계대전 전 만해도 사람들은 대규모 전쟁과 상관없이 인류 문명은 발전해 나간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뒤부터 사람들은 히틀러가 불러온 전쟁이 민주적 자본주의와 문명사회를 파괴했다고 믿게 됐다. 지난해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성을 강타한 9ㆍ11 테러를 전후해서도 사람들은 1차세계대전 당시와 같은 생각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9ㆍ11 테러 발생 뒤 지난 12개월 동안은 이에 버금가는 테러가 발생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벌써부터 불과 1년 전에 벌어진 참혹한 테러를 잊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망각`이란 아주 유용한 기능을 통해 과거의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을 다윈이 말한 다른 진화과정에 있는 동물들과 구분 짖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세계 국가들이 그들의 희소한 자원을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재화 생산에 쓰는 것이 아니라 몇몇 적대적 소수 그룹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데 쏟아 부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향후 수년간 그들이 벌어들일 실제 소득은 그 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특히 테러의 파괴력이 과학의 도움으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비용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과거 이라크 독재 세력의 파괴력은 18세기 북아프리카 해변에 출몰했던 해적들처럼 많아야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는 데 불과했다. 또 적어도 미래엔 아무리 작은 국가라도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것은 곧 수백 만 명을 동시에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냉혹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이런 위협으로부터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경제적인 기준으로만 보면 손해를 보는 투자를 해야 하는 현실을 감수해야 한다. 유로존, 미국,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몇몇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선진 국가들은 생산력 증대로 그나마 여력이 있다. 만약 이들 국가들이 9ㆍ11 테러 이전 상태로 경제를 복구하는 것이 국내총생산의 10% 정도만 투입해도 되는 간단한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테러의 주역인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은 아직 소탕되지 않았으며, 아마도 영원이 그렇게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들을 제거한다 해도 인류 역사 속에서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해악을 끼칠만한 테러 단체들이 아직 부지기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최근 발생한 몇몇 파괴 행위들은 단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일례로 히틀러의 세계대전 발발은 당시 독일의 실업문제를 해결했다. 또 히틀러에 맞선 미국의 대응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대공황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를 구했다. 오늘날 전세계 관심은 온통 미국이 더블딥(W자형 침체)을 겪을 것인가와 이로 인해 미 증시가 다시 붕괴될 것인가에 쏠려있다. 앨런 그린스펀이 이끄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1 차례나 되는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등 모든 금융정책을 동원했으나 미국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 적잖은 전문가들은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무력의 과시를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할 것이며, 이 것은 단기간에 걸쳐 미국의 경기 침체를 다소 완화시킬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이 출혈을 감내할 경우 도쿄, 런던 및 세계 여러 증권거래소들 역시 월가의 안정성에 공감하는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실제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지 알지 못한다. 또한 미 행정부가 실제 그런 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지난 91년 걸프전과는 달리 미국의 독자적인 행동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서방진영의 우방국들이 대거 참여했던 지난 걸프전 때는 이들이 많은 부담을 나누어 지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공격 시나리오엔 국제연합(EU)은 들어가 있지 않으며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도 팔짱만 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미국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라크 공격이 감행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유가를 높일게 확실하다. 이로 인한 원유 공급 부족은 곧바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부시 대통령이 그 동안 기업 부정을 신속히 척결하지 못해 실추된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이라크 공격이란 악수를 두게 될 것에 대해 경고한다. 전쟁이란 발발 초기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기 마련이다. 모든 당파들은 `국가 수호`란 대의명분 아래 초당적으로 뭉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의 진정한 참상은 특히 패전국 입장에선 곧 대중들을 힘들게 한다. 비록 승전국 지도자라 할지라도 전후가 되면 곧바로 투표권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하기 일쑤다. 일례로 히틀러를 패전시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전쟁 직후 영국 수상에서 물러났다.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의 환희를 목격했던 위드로우 윌슨 대통령도 결국 공화당의 고립주의에 굴복하고 말았다. 대규모 재산 피해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테러의 잔재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대중의 반감 속에서 시민의 자유와 문명을 훼손할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폴 새뮤얼슨 (보벨경제학상 수상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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