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민심 수습 마지막 카드…美수용 미지수

美부정적 반응땐 양국 통상마찰등 관계악화 우려<br>美업자들 '월령표시' 언급등 양국 사전조율 흔적


정부가 민심 악화의 ‘뇌관’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국내에 반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들끓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꺼내든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3일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수출 중단을 요청했으며, 이에 미국 측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검역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30개월 미만 월령 제한을 이끌어내기 위한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해석상 모호한 구석이 있는데다 실효성도 전적으로 협상 상대국인 미국에 달려 있어 엉킬 대로 엉켜 있는 쇠고기 문제에 속 시원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상의 재협상 요청=정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산 쇠고기 중 30개월 이상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을 겸허히 받들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중단을 요청했다”며 “미국 측으로부터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4월18일 양국 간에 합의된 수입위생조건 개정안 내용을 전면 수정하는 사실상의 재협상 요청에 나섰음을 시인한 것이다. 당초 양국은 미국이 강화된 동물사료조치 시행을 공포할 경우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연령 제한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협의에 따라 광범위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 중에는 당초 합의된 수입위생조건은 유지하면서 미국이 자율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출하지 않는 자율수출규제협정(VER)도 포함돼 있다. 미국 측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협정문 내용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국내에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들어오게 되므로 가장 원만하게 쇠고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 재협상이라는 ‘형식’을 피할 뿐 사실상은 기존 협상 내용이 수정되는 셈이다. 박노형 고려대 법대 교수는 “재협상이라는 말은 법적 용어가 아닌 만큼 붙이기 나름”이라며 “중요한 것은 정부 요청이 당초 합의한 수입재개 조건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국, 과연 수용할까=우리 정부는 이미 3~4일 전부터 외교 경로를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기 위한 미국과의 실무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농식품부와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미국 측은 아직 30개월 이상 수출 중단 요청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정부가 협상과 관계된 내용에 대해 대국민 발표를 했을 때는 미국과 어느 정도 사전 논의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측의 공식 입장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물밑 협상을 통해 우리 측의 요청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선에서 교감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2일(현지시간) 타이슨푸드와 카길 등 미국 주요 쇠고기 업체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한국수출 물량에 대해 월령 표시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눈길을 끈다. 다만 재협상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국내 여론이 명문화되지 않은 미국 수출업체들의 자율 결정에 누그러질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일본ㆍ대만 등과의 쇠고기 협상이 진행 중인 미국이 쉽사리 우리 측 요구를 받아들일지 여부도 의문이다. 미국이 선뜻 우리 측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미국 내 여론 악화와 추후 다른 국가와의 협상에서 파장이 적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경우 우리로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한 고시를 무기한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성덕 중앙대 법학대 교수는 “합의 당사자가 협상내용 수정에 동의한다면 국제법상으로 재협상이 문제될 일은 없지만 그렇지 않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법상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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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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