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5대재벌에 대해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또 정치권에 대해서도 개혁작업이 미진할 경우 자신이 직접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金대통령이 14일 월례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메시지는 「강한 정부」의 표방이다. 金대통령은 이날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는 5대재벌과 개혁에 주저하고 있는 정치권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동시에 이를 더 이상 늦출 경우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간담회 후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그동안 金대통령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정을 운영해온 데 대해 일부에서 너무 약하게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金대통령은 오늘 간담회에서 재벌 및 정치개혁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국민과 관계기관 등에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朴대변인은 그러면서 『앞으로 정부는 「강한 정부」로서 개혁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벌개혁에 대해 金대통령은 직접적이고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우리 경제의 사활을 걸고 기업구조조정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기다릴 만큼 기다려 줬다. 더 이상 기다릴 경우 국제신인도가 추락하고 국민의 불신감도 커지게 될 것이다』『이것은 사활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천시키겠다』는 일련의 언급은 평소 金대통령의 어조를 감안할 때 최상급의 강한 톤이다.
이는 역으로 유추해 보면 오는 26일께로 예정된 청와대 정·재계간담회 이전에 반도체 등의 빅딜이 일차 마무리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가 정·재계간담회를 당초 22일에서 26일께로 미룬 것도 회의 이전에 빅딜을 마무리토록 해 가시적 성과를 국민 앞에 보이려는 의도에서다.
강봉균(康奉均) 청와대 경제수석이 간담회 후 『은행제재를 받는 재벌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특히 유의할 대목은 5대 재벌 계열그룹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주채권은행과 체결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은 빅딜 뿐만 아니라 외자유치, 계열사 매각 등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각종 약속들이 담겨 있다. 비록 빅딜을 성사시키더라도 다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구조조정 차원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일부 재벌은 자금사정이 극도로 나빠 얼마가지 않아 은행들이 직접 도와줘야 할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5대 재벌 계열기업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날 배석한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이 『재벌에 대한 은행의 제재는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지 정부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배경설명을 한 것도 특정 재벌의 워크아웃 등에 따라 나올 수 있는 갖가지 억측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金대통령이 제시한 정부정책 우선순위는 신화4대 개혁의 완성 신화실업문제 해결 신화최소 2%의 성장으로 요약된다. 강력한 구조조정 아래 실업대책을 중소·벤처기업·문화관광산업 육성 등 경제발전대책과 연계시켜 경제토양을 개선시키겠다는 방향이다. 과거와 같은 대기업 중심의 대규모 투자를 지양하고 비인플레적 성장정책을 펴겠다는 것. 여기서도 정부의 강력한 개혁의지를 읽을 수 있다.
정치개혁에 대해서도 金대통령은 『절대적인 문제이며 국민의 요구가 대단히 크다』고 말해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였다.
金대통령은 특히 『내각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있으나 지금은 얘기하지 않겠으며 합당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 내각제나 전당대회보다 정치개혁이 시급하고 우선적인 과제라는 인식을 거듭 밝히는 등 자신의 모든 정치일정이 정치개혁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임을 시사했다.
金대통령이 이날 「강한 정부」를 표방하며 재벌 및 정치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인 것은 김종필(金鍾泌)총리와 내각제 논의를 8월까지 중단키로 합의한 데 힘입은 바 크다. 그 때까지 한 눈 팔지 않고 반드시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金대통령이 이날 간담회에서 전한 「강한 정부」메시지는 그동안 재벌과 정치권의 「행태」를 감안할 때 적절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계와 정치권이 내각제 논의동향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개혁을 지연시키거나 회피해 보려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섣불리 대응할 경우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다는 지적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어설픈 대응은 항상 마찰과 부작용을 일으켰던 과거의 예를 거울삼아 우선 제도적·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통해 개혁 당사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유도하고 결단을 내릴 때는 분명하면서도 다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준수 기자 J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