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23>우리 아빠 풀어주세요

가족은 재기의 희망줄수 있어 피고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



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재판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피고인의 가족입니다. 사실 피고인의 가족과 판사가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소곤소곤 대화를 하거나 피고인과 서로 눈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아, 피고인의 가족이구나’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물론 피고인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를 수밖에 없지만, 만삭의 몸으로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눈물을 닦으면서 혼자 돌아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 판사도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합의를 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남편의 탄원서를 읽을 때에도, 동생을 위해 자신의 전세보증금으로 동생 대신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형의 모습을 볼 때에도, 자기가 자식을 잘못 키운 탓이라면서 간절한 눈빛으로 판사를 바라보는 피고인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에도, 이혼 후에 혼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피고인을 법정 구속할 때에도, 판사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기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피고인의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사건을 검토하다 보면 가끔, 피고인의 아들이나 딸이 쓴 편지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삐뚤삐뚤한 글씨로, “변호사 아저씨가 아빠를 풀어줄 사람은 판사님밖에 없대요. 우리 아빠 풀어주세요.”라고 쓰여 있는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참 복잡해 집니다. 판사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또래 아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는 그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또 과연 어른들이 이 어린 아이에게 지금 아빠가 처한 상황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고인도, 자신이 전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신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두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이 있기에 피고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어설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된다 하더라도 나중에 사회에 나가 건실한 일꾼이 되겠다는 희망을 품는 것도, 그래서 더욱 자랑스러운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아빠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디 피고인과 그 가족이 서로 간의 사랑과 신뢰를 잃지 않길 바랍니다. 서로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경우 새로운 아픔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판사를 미워하지만 말아 주세요. 저희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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