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대우등 공격경영 기업 외환위기때 역사속으로

[건국 60년] 기업·제품 변천사 <br>61년 철광석·중석 수출 1,2위<br>70년대 중공업 주력산업 부상<br>90년대 반도체·조선·IT 뒤이어


건국 60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흥망성쇠는 모두가 한편의 드라마다. 서울 배오개고개에서 옷감을 팔던 ‘박승직 상점(1896년 개업ㆍ현 두산그룹 모태)’을 효시로 구인회상점(1931년), 삼성상회(1938년), 현대토건사(1947년), 선경직물(1953년) 등 현재의 LGㆍ삼성ㆍ현대ㆍSK 등 대기업들의 모태가 잇달아 태동했다. 당시 이들은 농수산물 유통 및 1차 가공식품 등의 판매 및 무역에 의존했다. 실제 지난 1961년 수출 1, 2위 상품은 철광석(530만달러)과 중석(510만달러)이었고 오징어(5위)와 활선어(6위)도 상위권에 올랐다. 기업들이 기업다운 면모를 갖추며 성장한 것은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주도하에 고도성장이 이뤄지면서 다양한 품목에 걸쳐 제조업 기반의 기업들이 성장했다. 1970년대에는 치약ㆍ라디오ㆍ전화기ㆍ흑백TVㆍ세탁기ㆍ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들이 ‘최초 국산’이란 명패를 달고 출시됐다. 이 즈음 중동특수로 건설업이 한단계 성장했다. 일찌감치 전자업계에 출사표를 던진 LG(당시 금성)는 70년대 국민들의 자부심을 한껏 고취시키며 생활가전제품의 국산화에 큰 몫을 담당했다. 기업들의 질적인 성장도 이뤄졌다. 1970년대 이후 중공업 비중이 점차 확대되더니 1975년부터는 중공업이 경공업을 뛰어넘어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등장했다.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 과정 속에서 정주영ㆍ이병철ㆍ김우중 등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준 스타들도 탄생했다. 197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영국으로 날아가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만나 500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설득해 차관을 받아온 사건은 유명한 일화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 바람을 타고 노사분규가 급증하면서 성장동력 상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3저 호황’과 88 서울올림픽 개최에 힘입어 기업들은 최고의 호황기를 누렸다. 1995년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평균 매출 증가율(27.7%)과 영업이익률(11.3%)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최고 기록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기업들이 산업구조 변신을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시기였다. 재벌 2세들의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수출 주력상품으로 반도체ㆍ조선ㆍITㆍ철강 등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마누라ㆍ자식 빼고 모두 다 바꿔라”며 신경영을 선언한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 이후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향한 삼성의 변신은 눈부셨다. 이후 반도체가 1992년 수출 1위 품목(68억달러)으로 처음 올라섰으며 삼성은 우리나라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성장을 거듭하던 국내 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맞는다. 세계경영을 외치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던 대우 등 수많은 대기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기업구조재편을 명목으로 다양한 ‘빅딜’이 일어나며 사업구조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폭풍 같았던 외환위기를 버텨낸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ㆍLG전자ㆍ포스코 등은 현재 매출액이 10조원을 넘고 영업이익률도 10%에 육박하는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이제 또다시 고유가ㆍ고원자재가 등의 파고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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