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가을의 세가지 斷想

10월은 가을을 대표해 가히 행사의 달이라고 할 만하다. 초ㆍ중ㆍ고 아이들은 모양새야 어찌 변했건 소풍ㆍ운동회ㆍ수학여행ㆍ학예발표회 등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요즘 아이들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큼직한 학교 행사에 참여하게 되고 일상 생활에서는 명색이 문화의 달이라고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행사가 신문지상에, 거리 포스터에, 현수막에 연일 고지되고 있다. 곳곳 행사 현수막·산행 인파 언제부터인가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특색 있는 축제가 시ㆍ군을 중심으로 색다르게, 또는 무슨 붐처럼 부각되고 있고 각각 마라톤 대회, 체육대회, 예술제에 지역별 동문회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가을이 무르익는 10월은 행사의 달이다. 내가 살고 있는 양평에서도 지난주 말에 메뚜기ㆍ허수아비축제를 열었다. 어느새 들에는 지리했던 여름을 잊은 듯 누런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런데 예년 같으면 이미 훤하게 추수를 시작해야 할 들판이 아직 그 누런 벼들을 부담스럽게 가득 안고 있어 농사짓는 이웃에게 물어보니 매주 계속된 ‘행사’ 때문이란다. ‘행사? 무슨 행사요’ 하고 의아해 하니 ‘거 왜 있지 않습니까. 매주 행사처럼 하루 이틀은 비가 내리니 벼 이삭이 말라야 추수를 하지요.’ 한다. 들은 누렇고 산을 울긋불긋 물들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니 6월 몇째주부터인가 시작된 비 내리기는 10월까지 거의 계속 매주 한두번의 비를 내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비 사이에 잠깐잠깐 생활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어느 해의 일시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이상 기온이나 자연변화, 그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와 같은 그런 재앙의 예고일까.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연변화, 갑작스런 가을비가 내릴 때마다 짧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풍경. 내게만 삶의 가속도가 붙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연령이나 세대에 상관없이 올 가을에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산다고 한다. 10월 초 연휴에 몇몇 회사의 팀장ㆍ간부들과 모처럼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자고 설악산을 찾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설악산의 풍경들, 설악광장에 근위병처럼 서 있는 소나무, 내설악의 비룡폭포, 비선대, 권금성, 맑게 흐르는 계곡물, 산행 길에 늘어선 울릉도 호박엿ㆍ번데기ㆍ커피ㆍ음료ㆍ옥수수ㆍ군밤을 파는 아주머니들까지 여전히 낯익고 정겹다. 설악산 단풍을 완상(玩賞)하고자 몰려드는 인파까지 익숙한 모습이다. 아쉽게도 전날 저녁 장마처럼 비가 내려 당초 목표인 대청봉 산행을 포기하고 하루 코스의 울산바위를 오르기로 했다. 문득 이른 단풍의 산은 올해도 여전히 아름답고 그윽한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풍경은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가족 단위의 여행이야 어느 곳이나 많아졌지만 이상하게 중년 이상의 단체 산행은 여자들, 주부들끼리 온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가족들 중에도 모녀가 산을 오르는 경우가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도대체 그 당당하던 아버지, 남자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이날 느낀 풍경이 자꾸 작아지는 남자들의 세계, 나이가 들어갈수록 약해지는 가장들의 발언권, 여성화돼가는 남자아이들, 이런 사회 생태변화의 반영이 아니길 빈다. 올 가을 우연하게 나타난 내 착시 현상이길 바란다. 칭찬.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우리 영화도 있지만 왠지 우리는 인간의 좋은 감성 중에 특히 질투나 시기심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사안에 대해 긍정적인 접근보다 부정적인 접근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뿌리에서 자라나는 나무가 어느 줄기가 너무 굵다고 해서, 그 줄기의 열매가 너무 탐스럽다고 해서 스스로 자신의 줄기를 잘라버리고, 말려버리는 것을 보았는가. 서로 격려 해주는 계절 됐으면 한 나무에서는 크고 작은 줄기와 심지어는 병든 잎까지도 모두 제 역할을 한다. 나무의 모든 요소들은 제 역할을 다하며 뿌리를 더 강하고 길게 뻗어가게 하며 나무의 원래 줄기를 굵게 하고 더 높은 하늘로 줄기와 가지들이 솟구치게 하면서 매년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큰 나무에서 떨어지는 형형색색의 장엄한 잎들의 행렬은 우리에게 뭉클한 사색과 감동을 주는 것 아닌가. 누구든(혹은 어느 조직에서든) 작은 것이라도 잘하는 것은 서로 칭찬하며 함께 더불어 격의 없이 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미래의 가능성을 서로 격려해주며 정치ㆍ경제ㆍ문화ㆍ사회ㆍ국제ㆍ과학ㆍ기술 각 분야에서 국가ㆍ인류발전에 획기적인 업적과 결과를 가져온 조직이나 천재적인 인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으면 좋겠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만들고 오늘 만난 사람보다 내일 만난 사람들이 더 즐겁고 기분 좋은 그런 세월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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