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르뽀] 정권교체현장 멕시코를 가다

[르뽀] 정권교체현장 멕시코를 가다경제회복 기대보다 불안감 넘실 멕시코 국민들은 71년간 장기집권하던 제도혁명당(PRI)의 정권을 교체한 여운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시내 곳곳에는 아직도 대선 대형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 있다. 물론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앞세운 PRI당 라바스티타 후보가 인디언 토착소년을 안은 모습이 담긴 포스터는 찢기거나 아예 떨어져 나갔다. 일당독재에 넌더리난 멕시코 시티 시민들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다. 인류사 박물관 좌판상의 남루한 옷차림과 은행과 슈퍼마켓 주변에 갱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서 있는 청원 경찰들의 상엄한 모습에서 지난 95년 페소화폭락 사태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멕시코 국민들은 1억 인구의 절반을 가난하게 만든 PRI 대신 폭스 당선자에게 치안 확립은 물론 금융개혁 등의 완성을 맡긴 셈이다. 전문가들은 『폭스 당선자가 세디오 정부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10여년간 통상상산업 분야를 맡아온 블랑코 통상산업개발부 장관은 『대안이 없으므로 폭스 당선자의 경제정책 등 정책 방향은 세디오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이날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는 힘들다. 폭스당선자가 치안확립 등의 분야에서 법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안된 가운데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코카콜라 지사장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멕시코 시민들은 코카콜라의 영업사원이 된 셈이다. 75년부터 4년간 코카콜라 지사장을 역임, 95년 과나화토 주지사를 지내다가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폭스 대통령 당선자에게 멕시코의 21세기를 맡겼다고 볼 수 있다. 한 40대 남성은 『폭스 당선자가 주지사 시절 멕시코 31개주 가운데 매우 낙후돼 있던 고나화토주를 경제발전 순위 5위로 끌어올린 점을 멕시코 시민들이 다시 한번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디오 정부는 선관위 중립 등 정치개혁에는 성공했지만 이것이 결국 폭스에게 정부를 헌납한 모양이 된 것은 아이러니』라며 『정권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세디오 정부의 정책 기조가 저변에 깔려 있어 멕시코 경제는 희망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시청 분수대 광장과 흡사한 멕시코 시내 쉐라톤 호텔 앞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던 50대 중반의 택시기사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PRI에 등을 돌렸다. 선거 한 달 전에 그런 예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앞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려운 게 사실이다.』 택시기사의 말처럼 멕시코 국민들의 분위기는 「변화=번영」이라는 등식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다. 쉐라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외국인 바이어는 『그동안 멕시코 정치가, 지방관료와 PRI당료가 한 가족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며, 71년 철의 장막을 폭스당선자가 제대로 헤쳐나갈지 여부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인수르 헨떼」도로나 공항등지에서 열 살이 채 안돼 보이는 소년들이 내·외국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시내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에쎌 양은 『대중버스 안에서도 강도들이 활개치고 있어 겁난다』며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재촉했다. 그녀는 또 택시타기도 마찬가지로 두렵다고 덧붙였다. 주진엽(朱進燁) 대사는 『저녁에는 아예 외출을 삼가하고 부득이 외출할 경우 몇명이 함께 다니는 게 상책』이라고 치안부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폭스 정부는 경제 회복도 중요하지만 치안확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요즘 멕시코에는 「폭스 가면」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폭스 당선자의 지지율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6년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진해야 할 금융개혁과 자유무역협정(FTA)지속 여부, 연방경찰·검찰의 부패추방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 등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여부에 따라 폭스당선자의 명암과 더 나아가 멕시코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시티=양정록기자 JRYANG@SED.CO.KR입력시간 2000/07/13 18:40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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