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포항제철:5/베트남합작사 포스비나(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철강산업의 불모지 베트남에 “기적의 제철” 씨뿌리다/92년 진출 일·호주 등 경쟁국 압도/컬러강판 등 제품고급화 본격 추진포항제철의 포스비나 공장은 호치민시 근교 푸옥롱이란 마을에 있다. 탄손나트 국제공항에서 뻗어나간 중심가를, 어지러운 오토바이와 자전거 행렬을 피해가며 1시간 가량 달리다보면 비교적 한산한 마을에 닿게 된다. 하얀 아오자이 차림의 학생들이 눈길을 끄는 푸옥롱마을이다. 이 마을의 한 귀퉁이를 돌면 포철의 로고가 그려진 철제대문이 나타난다. 포스비나 공장이다. 이 공장에서는 아연도골판(함석판)을 생산한다. 지난해 3만9천톤 가량을 생산, 3천83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베트남 사람들은 함석판을 지붕재료로 사용한다. 가뜩이나 더운 나라에서 지붕을 철판으로 하는 것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콘크리트보다 훨씬 가격이 싸기 때문에 가장 널리 쓰인다. 포스비나는 포철에 있어 「보석」과 같은 존재다. 베트남과 수교하기 전인 92년에 회사를 설립했고, 첫해부터 이익을 낸 뒤 5년 연속 흑자기록을 세웠다. 포철은 현재 베트남에 3개 철강공장(포스비나·VPS·비나파이프)을 가동하고 있는데 그 뿌리가 바로 포스비나다.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포철의 동남아 철강시장 진출도 포스비나의 성공에 고무된 결과다. 포스비나의 성공은 시장성이 큰 투자품목을 제대로 선택한데서 비롯됐다. 베트남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건축붐이 일면서 함석판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비나는 지난 92년 포철이 베트남 남부철강공사(SSC)와 3백90만달러를 공동투자해 설립했다. 포철이 1백95만달러를 현금으로 출자하고 베트남 남부철강공사가 17만7천달러는 현금으로, 1백75만5천달러는 현물로 각각 출자해 세웠다. 포스비나의 가장 큰 장점은 외부차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부담이 없다. 베트남은행의 공식금리는 연간 9.5%. 여기에 0.5∼1%의 부대비용을 더하면 10∼11%가 된다. 그나마 이는 달러 베이스일 때이며 동(베트남 화폐단위)으로 빌리면 20∼25%까지 치솟는다. 금융환경이 열악한 셈이다. 포스비나의 또다른 성공비결은 품질. 현지 건축업체들은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가장 질이 좋은 포스비나의 제품을 선호한다. 포스비나의 생산라인은 지난 67년 미국과 베트남이 합작으로 설립했던 비나통사의 노후설비를 인수, 확대한 것이다. 더구나 포스비나는 포철로부터 시황과 관계없이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하다. 지난 95년의 경우 철강가격이 급등, 경쟁업체들이 쩔쩔맬때 포스비나는 상대적으로 싼 값에 원자재를 확보, 4백71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전체 투자비를 뽑고도 남는 규모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경쟁업체들이 늘어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져 포스비나의 순익규모가 상당히 줄었다. 지난해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일본계 합작기업인 마루비나를 비롯해 11개 업체가 포스비나를 맹추격하고 있다. 이희명 부사장은 『올해 함석판의 수요가 12만톤으로 예상되는데 현지 생산능력은 20만톤을 넘어선 상태여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생산능력 1만톤 규모의 군소기업들이어서 상황이 그리 어렵지 않다. 포스비나는 철강산업의 불모지였던 베트남에 대량생산 방식의 현대적 철강산업을 일으킨 효시로 꼽히고 있다. 포스비나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일본 및 호주 철강기업들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베트남에서 철강사업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물류비 부담이 엄청나다. 베트남에는 변변한 도로가 없기 때문에 자동차로 남부에서 북부까지 철강제품을 수송하려면 며칠씩 걸린다. 물류비용은 톤당 1백 달러가량. 선박을 써도 30∼50달러는 줘야 한다. 이러다보니 저가제품인 함석판 만으로는 앞으로 사업을 하기 힘들다. 이부사장은 『베트남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어 컬러강판을 비롯한 고급제품으로 주력사업을 바꿔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포스비나는 현재 포철로부터 컬러강판을 비롯한 일부 고급재를 수입해다 판매하고 있으나 앞으로 컬러강판이나 아연도강판 등에 대한 투자를 단행,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어나갈 방침이다. 베트남은 최근 빠른 경제성장으로 도로·항만·공장을 비롯한 인프라 건설붐이 일고 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는 하루가 다르게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비즈니스맨들로 시내 호텔은 늘 만원이다. 포철이 베트남을 해외투자의 최적지로 판단,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포철의 베트남 총투자액은 1억6천만달러에 이른다. 포철은 대우그룹과 공동으로 베트남에 소규모 제철소인 미니밀 건설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포철이 소득수준이 높고 수요가 많은 남쪽에 설립할 것을 추진하는 반면 베트남 정부는 지역 균형개발 차원에서 중부 이북에 설립할 것을 고집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투자액만 10억∼20억달러로 추정되는 이 사업이 성사될 경우 베트남 시장은 포철의 아성이 될 것이라고 현지기업들은 전망하고 있다. 오수진 포철 하노이 지사장은 『베트남은 인구 7천만명의 「대국」으로 오는 2000년에는 철강수요가 3백만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의 생산능력은 그 10분의 1 수준인 30만톤에 불과하다』며 『베트남이 일관제철소 건설을 숙원사업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고 베트남의 포철맨들이 편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보낼만한 외국인학교가 거의 없는데다 가족이 아플 때면 홍콩 등 외국으로 나가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글로벌 포철맨」이란 자부심 하나로 숨막히게 더운 베트남의 여름을 버티고 있다. ◎인터뷰/오수진 포철 하노이사무소장/“베트남은 거대시장… 제철소도 세울것” 오수진 포항제철 하노이 사무소장은 포철 베트남 현지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포스비나·VPS·비나파이프 등 3개 현지 공장의 경영위원회 위원으로 참석, 주요 사항에 대해 합작선과 협의하고 사업방향을 결정한다. 베트남에 온 지 4년. 『베트남 말이 중국어보다도 어려워 배우기를 포기했다』며 겸손해하지만 현지인들이 놀랄 정도의 베트남어 구사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지구촌 어디로 보내든지 수개월만에 현지화될 수 있는 글로벌 포철맨이다. 포철맨 특유의 강인함과 끈기, 온화한 성품 때문에 현지채용인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가 「만나자」고 하면 베트남 정부 고위관료들도 아낌없이 시간을 내준다. 하노이나 호치민에서 「포스코(포철의 영문약칭)」의 성가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포철에 있어 베트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동남아 철강제품 생산 전초기지다. 미국의 UPI에 이어 두번째로 합작투자한 생산거점이다. 특히 포철은 수교전에 포스비나를 세워 양국간 경협에 한몫을 했다. ­베트남에서 철강사업 전망은.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인구를 모두 합치면 1억에 이르는 거대시장이다. 베트남은 이 시장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엄청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하고 있는데다 새로운 공장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 베트남의 철강수요는 지난해 1백10만톤으로 인구 1인당 15㎏에 불과하지만 1인당 1백㎏만 돼도 7백50만톤에 이른다.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 포철은 다른 선진국보다 베트남에 일찍 진출해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베트남 비지니스 환경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통계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통계자료가 미비하다. 작년 철강수요가 1백10만톤이지만 수요 산업별로는 아무 것도 없다. 수요전망이 힘들고 개략적인 추정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수요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와 분석시스템이 아쉽다. ­앞으로 현지 수요가 확대되면 고로 건설도 계획있나. ▲베트남이 당초 요청한 것도 일관제철소다. 하지만 고로방식의 일관제철소는 치소 3백만톤은 돼야 경제성이 있는데 베트남 수요는 1백만톤 밖에 안돼 2백만톤을 수출해야 하므로 무리가 있다. 그래서 미니밀 사업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호치민(베트남)=한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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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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