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양 당국은 와병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식행사 참석 보도를 내놓음으로써 그들 최고 지도자의 건재를 과시했다. 리근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도 지난 4일 미국 뉴욕을 방문하고 핵 협상과 관련한 실무적 활동을 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신정부에 대한 평양 당국의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북한의 이 같은 발 빠른 움직임은 부시 정부와 이미 길을 터놓은 협상 분위기를 오바마 정부하에서도 이어가고자 하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은 부시 정부와의 담판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는 데 성공했다. 대신 북한은 제한된 검증절차에 복귀한다는 것이 전부다. 향후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북한은 핵 검증에 대한 보다 세밀한 협상을 벌여나가야 하는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오바마 신정부가 대북협상에서 부닥치게 될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북미 간 합의의 세부사항과 북한의 약속준수 여부 문제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부시 정부는 임기 말에 이러한 세부적 합의와 북한 당국의 약속준수 의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협상을 이끌어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바마 신정부는 북한과 핵 검증에 관련, 어떠한 사찰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핵사찰에는 일반사찰ㆍ임시사찰ㆍ특별사찰 방식 등이 적용된다. 완전한 핵 검증을 위해서는 특별사찰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북미 간 핵 협상의 심각한 난관이 조성될 수 있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오바마 미국 신 대통령의 후보시절 메시지에서 그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생산계획 및 핵무기 확산 활동에 관한 검증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핵무기 협상과 관련, 북한 당국은 6자회담이 아닌 다른 협상 틀을 요구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핵 국가이기 때문에 핵 국가로서의 지위가 존중되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핵무기 관련 협상은 수평적 핵비확산(horizontal non-proliferation) 차원이 아니라 수직적 핵비확산(vertical non-proliferation), 즉 ‘핵군축’대화를 의미한다. ‘핵군축’ 협상 요구는 북미 간의 직접적인 군사대화 채널 구축으로 연결돼 북한은 여기에서 한반도 군사안보 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한결같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자위적 조치로 핵을 개발하게 됐고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혹자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은 억지에 불과한 것으로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한반도 군사안보 문제, 즉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자체를 그들 체제의 안전보장과 직결시키고 있기에 단순한 주장만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은 그들의 완전한 핵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한반도 안보문제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는 달리 핵 협상 성공을 위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좀 더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기본적으로 ‘협상모드’ 중심으로 대북관계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부는 대북관계 개선에 대해서 북핵 문제 해결을 포함한 포괄적인 접근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먼저 원만한 핵 협상을 위해 기존의 북미 합의 사항을 다시 검토하고 이행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필요하다면 특사파견을 통해 북미 관계개선에 필요한 논의를 급진전 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북미 군사대화를 추진해 한미동맹 문제와 주한 미군의 장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자 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남한 정부를 도외시하고 이뤄지기는 어렵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오바마 정부는 남한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오바마 정부가 우리의 뜻과는 달리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의 장래 문제 관련 미국의 입장을 설득하는 양태를 보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의 적극적인 대안마련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