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폰 좌초 「무조건 투자」에 경종/PCS망 제휴·시내전화 포기까지/공멸 위기감속 「적과의 동침」 늘듯나라전체를 강타하고 있는 태풍 「IMF호」앞에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해 온 정보통신업계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조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으며 끝없이 이어질 것 처럼 보이던 투자가 위축되고 있고 올 중반까지만 해도 못들어가 안달이던 신규정보통신업체에 대한 지분 참여의 열기도 오히려 확보한 지분마저 내놓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또 앙숙 처럼 싸우던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손을 잡고 있다.
더구나 시티폰의 경우 지역사업자 10개 업체는 숫제 사업권을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지역 시티폰 사업자들은 최근 PCS(개인휴대통신)의 등장으로 사업여건이 어려워지자 사업권 반납과 함께 가입자와 시설 모두를 한국통신이 매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머니 속의 공중전화」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출범한 시티폰이 9개월만에 좌초한 것이다. 한국통신이 인수할 경우 시티폰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업자가 경쟁하던 분야에서 일약 한통의 독점사업으로 바뀌는 급격한 구조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밑빠진 독」으로 변한 경우여서 통신사업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업체들에 좋은 경종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분야였던 PCS 3사는 신규투자에 따른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데다 시장마저 예상했던 것보다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내년도 투자계획을 속속 축소조정하고 있다.
특히 한솔PCS와 한국통신프리텔은 지난 4일 지방의 망을 서로 함께 사용한다는 전략적 제휴를 전격 발표했다. 광고를 통해 「우리 회사 기지국이 더 많다」며 치열한 감정싸움을 벌이던 업체끼리의 제휴라는 점에서 관련 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내막을 살펴보면 「적과의 동침」이 불가피 했음을 알 수 있다. 더이상 각사가 개별적으로 수천억원씩을 사용하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으며 IMF시대에 얼어붙은 자금상황에서 투자비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2 시내전화 사업자인 하나로통신에는 지난 6월 사업권 선정 때만 하더라도 4백50여개 업체가 서로 지분을 많이 확보하려 경쟁을 벌였으나 지난 9일 끝난 최종 납입자본금은 당초 예상 2조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6천6억원에 그쳤다. 참여업체도 3백57개사에 불과했다. 경기가 어려워지자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지분 참여를 무더기로 포기한 것. 정보통신분야는 투자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바뀌었음을 보여준 사례다.
남의 일처럼 보이던 구조조정의 바람이 정보통신업계에도 강하게 불어닥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제 막 경쟁체제로 접어든 국내 통신업계는 경쟁구조가 채 정착되기도 전에 구조조정의 시련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조정에 대해 전문가들은 오히려 시의적절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주도권 싸움, 체면 등으로 불필요한 돈을 쓰는가 하면 과열경쟁 속에서 출혈판매와 무리한 시설투자에 나서는 등 거품이 일기 시작하던 국내 통신업계로서는 지금이 오히려 구조조정의 적기라는 지적이다.
한국통신정책연구소(KISDI) 염용섭 박사는 『정부가 나서도 잘 안되던 기지국 공용화 사업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어 IMF를 통한 타율적인 구조조정이 국내 통신업체들의 체질 개선을 위한 호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백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