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개정안 국회 처리가 청와대와 여야의 정치력 실종으로 불발되면서 출범 이틀째인 박근혜 정부가 26일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 파행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부총리를 부활시켜 경제위기 대응을 총괄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를 신설해 성장동력을 재점화하려는 계획은 허공에 뜬 상태다. 외교통상부에서 지식경제부로 이관될 통상 업무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중앙부처 공무원 상당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일손을 놓고 있다. 주요 부처의 새 수장들은 언제부터 업무에 매진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과(課) 한 개 정도의 향방을 놓고 국정 전반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는 이 와중에도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여야는 정부조직개편안 1차(14일), 2차(18일) 처리시한을 넘긴 데 이어 이날도 합의에 실패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지난 22일 공식 협상 중단 이후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 물밑접촉을 계속했지만 단 한 가지 입장 차이로 합의에 실패했다.
현행 방송통신위원회 업무인 IPTV와 유선방송(SO), 케이블TV의 일반 채널사업자(PP), 위성방송 관련 정책을 존치하느냐 신설될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느냐가 그것이다. 사실상 중앙부처 1개 과의 업무에 그치고 담당 공무원도 10명이 안 되지만 이 때문에 합의된 경제부총리 부활,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신설, 외교통상부에서 통상을 지식경제부로 이관해 산업통상자원부 설치, 식품의약품안전처 승격 등은 꽉 막혀 있다.
국내 경기침체는 여전하고 환율전쟁 등 글로벌 경제 상황은 격화되고 있지만 법률상 직제가 그대로여서 기획재정부가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적극 수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로 바뀔 지식경제부 역시 통상 업무에 속도를 낼 수 없는 처지다.
경제부총리와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는 정부개편안이 처리되지 않아 법률에 없는 직책이 돼 인사청문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부처 기능이 대폭 축소될 외교부와 국토해양부ㆍ농림수산식품부ㆍ교육과학기술부ㆍ방송통신위원회 등도 조직개편에 따른 대규모 인사이동이 예정돼 반쪽 운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통상정책과 교섭은 올스톱된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신설될 미래창조과학부는 정상가동에 3개월 이상은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여당은 케이블과 위성방송ㆍ인터넷TV 등이 방송통신 융합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야당 역시 방송 공공성 및 공정성을 내세워 방송통신위원회 존치를 주장하며 여권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측 모두 "양보할 만큼 양보했다"면서 상대방 책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정부조직개편안 합의 처리가 계속 불발되자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에 대해 발목잡기를 제발 중단해달라"며 여론에 호소했다. 반면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린 지침대로 움직이는 새누리당은 청와대 출장소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