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보사태의 교훈(송현칼럼)

말도 많고 말썽도 많았던 한보가 마침내 쓰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어려운 때에 발생한 한보그룹의 부도가 경제계에 미칠 파장이나 금융시장에 줄 심각한 충격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다.다만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로 사회 전체가 시끄러운데다 금융개혁의 가속화로 금융계마저 어수선한 상황에서 한보그룹의 몰락은 우리에게 문제를 새로이 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먼저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국제경쟁력 저하로 인한 구조적인 어려움이 재계, 학계 또는 언론 일부에서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비탄력적인 고용관계, 고임금, 노사갈등 등 노동문제에서만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지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노동문제가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되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최고 경영진의 무능력과 무모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오너경영인의 독선적이고 비합리적인 사업계획과 끊임없는 영역확장에 대한 욕망, 이를 부추기고 있는 전문성과 경쟁력이 결여된 중간관리층의 권력순응형 생존본능 자세, 이러한 것이 결합되어 기업 자체의 기초를 부실하게 하고 있지 않을까. 한보의 몰락은 독과점폐해 같은 「시장실패」도 중요요인이 됐다. 또 노사관계 등 「열악한 기업환경」도 경제활동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영실패」가 가장 심각하다. 지금 한편에서는 과감한 금융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항상 대두되는 문제가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이고 주인없는 은행의 비효율적인 경영에 대한 불만이다. 이번에도 주인없는 은행의 주인찾아주기가 논의될 것임이 틀림없다. 이 마당에서 강력한 주인을 가진 한보가 쓰러졌다. 주인이 있어도 망하고 주인이 없어서 경쟁력 제고가 안된다는 묘한 이율배반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주인이 있어도 망하고 주인이 없어도 망하는 기업의 경영실패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한마디로 경쟁 제한과 정보의 비대칭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규제와 특례, 신규진입의 제한과 기득권 보호, 기업공시제도의 불철저와 투명한 정보의 결여가 모든 단계의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상품과 용역의 판매·유통시장,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기업의 가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주식, 채권시장과 경영권을 사고 파는 M&A 시장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경쟁의 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비경쟁적 시장에서는 기득권이 초과이윤과 진입장벽으로 철저하게 보호를 받는다. 때문에 정부로부터 일정영역에서 허가를 따내면 일단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그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도전받지 않는 경영권은 누가 맡아도 해낼 수 있다는 가상현실과 의제환경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굳은 신념으로까지 발전하면서 공사를 막론하고 인사의 일반적 현상으로 만연된다. 재벌기업의 경우 경영권의 친족독점 내지 친자상속이 자연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이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탈법적 절차마저 서슴지 않는다. 은행 등 공적 기업의 경우에는 최고 경영권을 놓고 과당경쟁이 빚어진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라면 나라고 못할 게 뭐냐는 생각과 기왕이면 가까운 사람을 앉히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정치권력 주변의 생각이 합쳐져서 은행경영권 쟁취를 위한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한 무한경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경영권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경우 은행에 주인을 찾아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경영실패」의 문제는 기업의 소유구조 여부와 상관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경쟁력은 시장경쟁을 통해서 끊임없이 도전받고 검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 은행 등 이해관계인에게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최고 경영진을 개방적이고 경쟁적으로 선출할 수 있는 기업통할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 끝으로 한보사태로 인한 연쇄파장을 막기 위해서는 한보거래자에 대한 보완대책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원은 선의의 중소업자에 한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불량 기업체나 부실은행과 자기 책임하에 거래를 한 사람은 그 결과의 불이익에 대하여도 책임을 지게 해야 기업경영풍토가 바로선다.<이헌재 조세연구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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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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