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아빠 어디 다녀"에 말문 닫혀… '부실 주홍글씨' 언제 씻을지 막막해요

■ 저축은행 합수단 525일 만에 해체… 젊은 저축은행인들 애환 들어보니<br>불법 사금융보다 못한 대접… 퇴출 보도 나올때마다 가슴 덜컹

저축은행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던 지난 2011년 9월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들이 처음으로 가지급금을 지급하자 한 대형 저축은행 본점 앞에 예금자들이 몰려와 밤을 새우며 진을 치고 있다. /서울경제DB



"아빠 어디 다녀" 딸 질문에 억장 무너졌다
'부실 주홍글씨' 언제 씻을지 막막해요■ 저축은행 합수단 525일 만에 해체… 젊은 저축은행인들 애환 들어보니불법 사금융보다 못한 대접… 퇴출 보도 나올때마다 가슴 덜컹

신무경기자mk@sed.co.kr















아래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저축은행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던 지난 2011년 9월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들이 처음으로 가지급금을 지급하자 한 대형 저축은행 본점 앞에 예금자들이 몰려와 밤을 새우며 진을 치고 있다. /서울경제DB











“아빠는 어느 회사 다녀?”

대검찰청의 저축은행 비리 합동 수사단이 해체된 27일. 합수단은 이날 “지난 525일 동안 정ㆍ관계 인사 137명을 재판에 넘기고 6,564억원의 재산을 환수했다”며 “대형 비리의 성공적 수사 모델”이라고 자평했다.

저축은행에 이렇게 ‘비리 온상’이라는 낙인이 최종적으로 찍힌 날, 김범태(가명ㆍ36) oo저축은행 대리는 또 한번 억장이 무너졌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아빠의 직장을 물었는데 “저축은행에 다닌다”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김 대리는 “여섯살 난 아이가 회사를 물어보는데 당당하게 저축은행에 다닌다고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며 “똑같이 세금을 내는 국민인데 저축은행 업계에서 일한다고 나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야속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김 대리는 나은(?) 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합수단 해체를 앞두고 지난 한달 동안 수도권의 수많은 젊은 저축은행원인들과 만난 결과, 이들의 가슴에는 쉽게 아물기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가 패여 있었다.

젊은 직원들의 허탈함은 고객들을 만날 때부터 시작한다. 영업정지를 당하고 불법대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저축은행 오너들의 사례를 떠올려보면 저축은행 직원들도 한통속 아니냐는 얘기다. 이혜영(가명ㆍ29) 스마트저축은행 사원은 “어떤 고객들은 부실 저축은행 경영진과 우리를 한 데 묶어서 도둑놈들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현정(가명ㆍ31) 푸른저축은행 계장은 “불법 사금융업자들보다 못난 사람 취급 당하는 게 요즘 저축은행의 위상”이라고 한탄했다.

미혼 저축은행 직원들은 소개팅 나가기도 쉽지 않다. 직장인이면 자연스레 다니는 회사를 묻게 마련인데 소개를 해주는 사람이나 상대편 이성이 부담스러워 하는 탓이다. 김영호(가명ㆍ38) 현대스위스저축은행 과장은 “젊은 직원들은 소개팅 나가기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결혼한 분들은 그나마 낫다”고 씁쓸해했다.


젊은 저축은행 직원들의 속앓이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은 구조조정의 한파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입사할 때 품었던 꿈은 업계가 처한 현실처럼 바닥으로 나뒹굴고 있다. 나름 열심히 뛰고 있지만 주변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28일 저축은행의 반기 영업공시가 이뤄져 부실사가 드러나면 업계는 또다시 폭풍우를 겪게 된다. 영업의 최전선에 있는 젊은 저축은행 직원들은 그래서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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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의 건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예금상담 시간도 두 배는 길어졌다. 강현정(가명ㆍ31) 푸른저축은행 계장은 “업무처리 시간은 똑같지만 우리 저축은행이 튼실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부연설명이 길게는 20~30분 걸린다”며 “2년 전부터 상담이 늘더니 최근 안 좋은 소문을 듣고 온 고객들이 질문을 많이 해 설득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에 안 좋은 언론보도가 나오면 업무 스트레스도 심해진다. 최근에도 신안저축은행이 대주주에 불법대출을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석우(가명ㆍ36) 스마트저축은행 대리는 “나쁜 말만 들리면 고객들이 곧 무너지는 것 아니냐며 쉴새 없이 문의전화를 해온다”며 “우량한 저축은행이라고 해명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저축은행은 다 부실하다고 생각하는 데 대한 야속함도 있다. 올해 31살인 한 저축은행 직원은 “우리 회사는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여신 관련 결제를 올리면 다수의 경영진이 이를 보고 판단한다”며 “심의위 조차 없이 대표이사 하나가 달랑 결제하는 몇몇 시스템 없는 저축은행을 보고 전체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태(가명ㆍ33) △△저축은행 주임은 “회사가 커지면 상관없겠지만 업계 자체가 죽어가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업계 최우량 회사라는 △△저축은행의 직원 마저 허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퇴사율도 높다. 한 저축은행은 지난해 신입행원 30명을 뽑았지만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신입공채에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퇴출 저축은행에 있던 일부 직원들은 저축은행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아래의 가교저축은행으로 넘어가도 모두가 채용되는 건 아니다.

저축은행 직원 수는 지난 2010년 6월 말 7,783명에서 2012년 7,860명으로 923명이나 줄었다. 2011년 이후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만 26개에 달한다. 최근에도 서울ㆍ영남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의 처지는 딱하지만 저축은행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며 “구조조정 후에 살아남는 곳은 우량하다는 증거가 되므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저축은행 직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추가로 퇴출되는 곳이 나올 때마다 수많은 젊은 저축은행인들은 가슴에 멍울이 생길 것이다. 씻고 또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부실의 주홍글씨’. 언제나 그들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흐를 수 있을까.














신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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