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성능미달품 공급·시내전화 교환기/보완요구엔 느긋

◎정부 “선구매 후보완” 특혜… 17개 항목 불량/3자간통화 서비스등 안돼 81억원어치 ‘낮잠’/루슨트 “10월말께나 수리” 한통선 발동동「루슨트 테크놀로지스는 한국을 봉으로 아는가」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인 미국의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사가 한국통신의 조달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채 성능미달의 시내전화용 교환기를 공급하는가 하면, 한국통신의 잇딴 성능보완 요구를 불성실한 태도로 계속 미루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에 따라 까다로운 조달절차를 일일이 준수해도 공급자격을 따기 힘든 국내 교환기업체들이 통신시장 개방으로 인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한국통신과 교환기업계에 따르면 국내 인증시험에서 우리 통신망과 맞지 않아 지난해 부적합 판정을 받은 루슨트의 교환기 「5ESS­2000」 1만3천5백회선이 인천 연수전화국 관내에 설치돼 최근 개통됐다. 루슨트는 이어 이달중 같은 교환기를 광명, 일산전화국에 4만5천여회선분을 공급할 예정이다. 3개 전화국에 설치하는 루슨트 제품은 금액으로 81억원이 넘는다. 이에 따라 이들 3개 전화국 관내의 일부 신규 가입자들은 당분간 3자 통화, 부재중 안내, 회의통화 등 부가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통신은 지난해 루슨트의 5ESS­2000에 대한 인증시험에서 ISDN(종합정보통신망)기능, PC통신용 패킷망과의 연동기능 등이 국내 규격에 맞지 않아 처음엔 구매를 거부했었다. 이에 루슨트가 미국 정부를 통해 정보통신부에 압력을 가해 한국통신은 결국 「선구매 후보완」이라는 전례없는 특혜를 주며 루슨트와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루슨트는 이 「약속」마저 제대로 이행치 않고 있다. 루슨트는 성능을 개선했다며 지난 2월14일∼3월10일 한국통신으로부터 1차 시험을 받았다. 결과는 ISDN기능, 3자통화 등 부가기능을 포함해 모두 17개 항목에서 불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적격 교환기가 현재 연수전화국 등에 설치되고 있는 것이다. 루슨트는 이어 17개중 10개 항목을 보완했다며 지난 4∼7일 서울 방학전화국에 5ESS­2000을 설치, 2차 시험을 받았다. 나머지 7개는 오는 10월31일까지 보완하겠다며 멀찌감치 미뤄놓았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2차 시험 최종결과가 아직 안나왔지만 10개 항목 대부분이 아직도 규격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루슨트의 보완노력이 대단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국민의 통신서비스 수요가 고도화되면서 통신망의 두뇌격인 교환기는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때문에 교환기는 구매자인 전화회사가 통상 3년여의 구매인증과정을 거치면서 통신망에 완전히 적합하도록 엄격한 시험과 조달절차를 밟는다. 또 교환기를 외국시장에 팔기 전에 그 나라의 통신망구조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보완하는 작업(CA·Country Adaptation)을 반드시 준수하는게 공급자의 의무다. 그러나 루슨트의 경우 우리 통신망에 한번도 써보지 않은 교환기를 공급하는 입장에서 자국 정부를 동원, 힘을 앞세워 공급자격을 따내고 3년 걸리는 인증과정도 건너뛰는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루슨트측은 『한국통신의 규격에 맞추기 위한 지원계획이 있다. 하지만 본사에서 조치해줘야 하는데 본사의 일감이 많은 반면 한국통신의 물량이 작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을 뿐이다.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며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루슨트는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인 한국통신프리텔이 지난해 실시한 구매입찰에서도 CA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미국에서 쓰는 제품을 그대로 제시, 탈락한 바 있다. 루슨트는 그러나 한솔PCS에는 교환기 5ESS­2000을 비롯, 기지국 등 경남·북 전역에 설치하는 시스템 일체의 공급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한솔PCS는 지난해 정통부로부터 PCS사업권을 딸 때 국산장비 구매비율을 92%로 제시했다. 외국장비를 8%만 사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현재 한솔이 구입한 루슨트장비는 전체장비구매액의 25%로 정부에 약속한 8%를 훨씬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이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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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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