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5월 31일] 정책 딜레마의 시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세계경제는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낮아지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렇잖아도 경제정책은 서로 상충되는 목표가 충돌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과 가계가 경제적 의욕을 잃고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시기에는 정책선택의 딜레마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찾기 힘든 '최적의 정책 믹스' 세계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논의되는 출구전략은 거시정책 딜레마의 좋은 예다.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저금리를 오랫동안 방치하자니 또 다른 자산거품과 인플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자니 모처럼 회복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나게 늘어난 재정적자 역시 그대로 두자니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정부부채가 두렵고 방만해진 재정의 고삐를 죄자니 아직은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나 소비가 미덥지 않다. 경제의 개방화 수준이 높아지면 고용ㆍ물가 등 대내 균형뿐만 아니라 무역ㆍ자본 등 대외균형도 동시에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선택의 어려움이 더해진다. 개방경제를 다루는 국제경제학에서 독자적인 통화정책, 유연한 환율제도 및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삼위일체의 딜레마(Trilemma)'는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글로벌화로 금융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된 소규모 개방형 국가들은 경제위기의 발생으로 자본유출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면 확장적 통화정책이나 통화가치 안정 중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막다른 선택에 부딪히게 된다.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에서 시작된 유로권의 위기는 이 정설이 사실임을 또다시 입증하고 있다. 유로경제에 속하는 그리스의 경우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통한 대외균형의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내외 동시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혹독한 고금리와 내핍정책뿐이다. 일반대중의 저항에 부딪친 그리스 정부에 이 같은 선택은 정치적 도박이나 다름없다. 정책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 그리스에 유로 대국들이 대대적인 금융지원을 함으로 유로권의 통합을 더욱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낮아지면 분배를 둘러싼 미시정책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는 학교 무상급식 문제는 효율과 형평이 충돌하는 미시정책 딜레마의 예이다. 무상급식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만 제공된다면 재정 부담이나 세 부담에 미치는 영향은 작으면서 취약계층의 소득보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의 전면 확대는 현재와 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효율성이나 형평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주의 깊게 따져봐야 한다. 다행히 미시정책은 어느 정도 정책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책 효과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예컨대 무상급식의 경우 지자체별로 실험대상 학교를 선정해 일정 기간 빈곤층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과 전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나눠 실시해보면 효율과 형평에 미치는 효과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회복지적 성격의 미시정책에 주류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응용한 정책실험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 우선순위 둬야 거시정책의 경우는 국가 경제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책당국자는 학문적 주장이나 과거의 경험에 입각해 정책효과를 판단해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시기일수록 거시정책은 금융시장에서 파생되는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주고 금융시장의 투기요소에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뉴노멀 시대를 앞서갈 수 있도록 신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투자수요를 창출하고 민간의 경제심리를 북돋우는 데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