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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장만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회사원 김민용(34)씨는 기름값에 예민하다. 지난 2011년 12월 사는 곳 근처인 경기도 용인에 '알뜰주유소 1호점'이 생겼을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최근 주유소에 새겨진 기름값 입간판을 볼 때마다 고개를 젓고는 한다. 김씨는 "요즘에는 알뜰주유소보다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가 더 싼 경우가 많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22일 전국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최저가 주유소 50곳 중 알뜰주유소는 5곳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기름값이 비싼 것으로 인식되는 SK에너지 주유소가 15곳, GS칼텍스 주유소가 6곳이었다. 알뜰주유소 수가 1,120여곳으로 전체 주유소(1만2,000여곳)의 10%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알뜰주유소가 '기존 주유소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출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런 결과다.
전체 알뜰주유소의 평균 기름값은 일반 주유소보다 저렴하기는 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5월 한 달간 알뜰주유소에서 판매한 보통 휘발유의 평균 가격은 ℓ당 1,512원43전으로 정유 4사 중 가장 저렴하게 판매한 현대오일뱅크(1,529원38전)와 ℓ당 약 17원 차이가 나는 데 그쳤다. 40ℓ를 주유해도 알뜰주유소가 6만497원, 현대오일뱅크 주유소가 6만1,175원이다. 알뜰주유소를 찾아봐야 고작 700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알뜰주유소와 정유 4사의 평균 판매가 차이는 ℓ당 30원90전이었다. 신용카드 결제로 할인받거나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기존 주유소가 더 이득이다.
소비자들도 이를 체감하면서 '알뜰주유소=저렴하다'는 인식도 이미 무너진 상태다.
김홍준 한국자영알뜰주유소협회 사무국장은 "알뜰주유소가 가격경쟁력을 잃으면서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의 고충이 크다"고 전했다. 한 알뜰주유소 사장은 "정유사 간섭이 없어 알뜰주유소 운영을 택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처음에는 '알뜰주유소' 간판을 걸고 알뜰주유소를 운영했던 한국도로공사와 농협중앙회는 아예 'NH' 'ex'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알뜰주유소보단 자체 브랜드를 내거는 쪽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당초 알뜰주유소를 1,3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었지만 알뜰주유소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줄면서 알뜰주유소 숫자는 최근 1년간 1,100여개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통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알뜰주유소의 생존과 추가적인 가격 인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알뜰주유소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석유를 받아온다. 하나는 한국석유공사의 입찰에서 알뜰주유소 공급자로 선정된 정유사로부터 공급받는 '1부 시장'들이다. 자체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유사의 입장에서는 애초에 자사 주유소 공급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기는 어렵다. 중간에 석유공사가 떼가는 수수료도 있다.
두 번째는 자체 유통망을 갖고 있지 않은 한화토탈 등의 정유사나 중소 석유수입사로부터 직접 공급받는 '2부 시장'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개입이 적고 가격 면에서도 메리트가 있는 두 번째 경로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유가가 잦아들면서 '알뜰주유소 무용론'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기존 주유소와 큰 가격 차이가 없는데 굳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도리어 인위적 가격 개입에 따른 정유 시장의 수요 공급 원리만 깬 것 아니냐는 원론적 비판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있다. 알뜰주유소 자체를 없애지는 못해도, 차제에 제도 자체의 도입 취지와 운용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