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쿠스코·마추픽추

하늘과 맞닿은 도시 神의 숨결 느껴지는듯<br>해발 3,400m 고산증 수시 엄습 신전 등 석조 건축물 '불가사의'


마추픽추의 해시계 ‘인티우아타나'. 태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쿠스코 동쪽을 지키는 요새 ‘삭사이사망'. 집채만한 돌을 깎아 성벽을 쌓았다.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이곳에서 마추픽추 여행이 시작된다.

페루 수도 리마를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여객기가 고도를 낮추는 듯 하더니 이내 착륙한다.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 쿠스코. 이 곳은 해발 3,400미터, 하늘 아래 첫번째 도시다. 누군가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을 넘자마자 도착한다”고 전해준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공항에 들어서자 걱정부터 앞선다. 고산증 때문이다. 낮은 기압과 산소 부족으로 생기는 고산증은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나타난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두통이나 구역질, 구토를 일으킨다고 한다. 리마 공항에서 사먹은 고산증 예방약 덕분인지 별다른 증상은 없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택시가 줄지어 서있다. 택시는 너무 낯익었다. 오직 티코 뿐이었다. 쿠스코에서 한식당 ‘아리랑’을 운영하는 남승학 사장이 “쿠스코 시내에만 티코 택시가 5,000대가 넘는다”고 전한다. 쿠스코 중심가인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호텔과 호스텔, 식당, 여행사들이 몰려 있다.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이 곳에서 마추픽추 여행을 시작한다. 잉카족이 제국으로 발전시킨 시기는 15세기말. 전성기 시절 우아이나 카파크 왕이 이끈 잉카제국은 과테말라와 콜롬비아에서 칠레로 이어지는 약 5,000km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1525년 카파크가 죽은 후 아들 간에 권력분쟁이 일어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결국 패권을 잡은 아타와루파가 스페인의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살해되면서 400여년에 걸친 잉카문명은 막을 내렸다. 20여명쯤 되는 외국인들과 함께 쿠스코 씨티 투어에 나섰다. 대성당과 잉카제국 당시 태양의 신전이었던 코리칸차, 쿠스코 동쪽의 요새 삭사이사망 등을 둘러봤다. 쿠스코가 ‘돌의 도시’라고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집채 만한 바위를 이리 깎고 저리 깎아 집을 만들고 벽을 쌓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잉카제국에는 바퀴가 없었다는 것. ‘도대체 이 바위들을 어떻게 옮겼을까’. 수원(水源)을 알 수 없다는 탐보마치이로 가는 언덕길을 5분쯤 걷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고산증이다. 약 한알을 얼른 삼켰다. 이튿날 새벽 5시30분. 마추픽추로 떠나는 기차가 출발하는 쿠스코의 산 페드로역 앞. 두툼한 점퍼 차림의 여행객들로 붐볐다. 12월 페루는 여름이 시작되지만 쿠스코의 일교차는 엄청나다. 아침에 5도 안팎이었던 기온이 한낮에는 23~24도까지 오른다. 정각 6시 쿠스코를 출발한 기차는 9시 40분경 마추픽추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인 아구아스칼리엔테스역에 도착했다. 토산품을 사라고 덤벼드는 인디오들을 뒤로하고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여기서 또 20분. 버스는 천길 낭떠러지 옆으로 난 비포장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현지 사람들은 이 길을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한 미국 고고학자 이름을 따 ‘하이램 빙험 도로’라고 부른다. 잉카어로 ‘늙은 봉우리’란 뜻의 산상 도시 마추픽추는 발견 당시 잉카인들이 스페인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마지막 도시 ‘빌카밤바’로 알려졌다. 잉카 멸망 후 400여년간 잊혀졌던 이곳을 1911년 발견한 하이램 빙험도 죽을 때까지 이 곳을 빌카밤바로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잉카의 상징인 황금이 발견되지 않는 등 의문이 많아 학계에서는 빌카밤바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목적’을 가진 잉카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했던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쿠스코 출발때부터 내린 비는 이 곳에 도착해도 그치지 않는다. 우산을 받쳐들고 무려 40달러나 하는 입장권을 보여준 뒤 마추픽추 입구로 들어섰다. 비구름 사이로 마침내 마추픽추의 전경이 드러난다. 해발 2,280미터에 정교하게 세워진 ‘공중도시’. 와이나픽추(잉카어로 젊은 봉우리)를 등진 채 숨어있는 마추픽추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품 같다. 여행객들의 함성과 함께 카메라 플래쉬가 요란하게 터진다. 사방 5제곱킬로미터인 마추픽추의 절반은 ‘안데네스’라는 계단식 밭이다. 정말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밭을 만들어 놓은 기술이 경이로울 정도다. 당시 잉카인들은 물을 저장하는 기술까지 갖고 있었다. 계단식 밭을 지나자 수로를 통해 물이 모이는 ‘물 긷는 곳’이 나타난다. 바로 옆에는 미라의 안치소로 추측되는 ‘능묘’가 있고, 이어 자연석 위에 건물을 세운 ‘태양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전설속의 잉카 1대왕 망코 카파크가 태어났다는 ‘세 창문의 신전’을 지나면 마추픽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된다. 여기에 ‘인티우아타나’라는 해시계가 있다. 역시 큰 돌을 깎아 만들었다. 가이드가 “태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고 설명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돌에 손을 얹는다. 해시계 맞은편 중앙 광장을 지나면 귀족들과 서민, 기술자들이 살았던 주거지가 늘어서 있다. 마추픽추 어느 곳에서나 건축물들의 견고함에 새삼 놀란다. 돌과 돌 틈 사이로 종이 한장 끼워 넣을 수 없다. 네티즌들이 선정할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들어가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거주지 옆의 ‘콘도르 신전’을 끝으로 2시간 남짓한 마추픽추에서의 ‘시간여행’은 끝이 났다. 쿠스코로 돌아가는 기차 안. 피곤함에 잠깐 졸다 웅성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창 밖 멀리 안덱스 산맥의 만년설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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