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헤어지면 분신하겠다’며 휘발유를 끼얹고 협박하는 여자친구의 옛 애인에게 라이터를 던져줘 실제로 자살에 이르게 했다면 이는 자살방조죄에 해당할까.
법원은 ‘아니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1부(부장 이기택)는 휘발유를 끼얹고 협박하는 상대를 향해 라이터를 던져줘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된 정모(3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살방조죄는 피해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자살을 실행하도록 돕는 행위이지만 정씨는 정반대로 피해자 박모(26)씨가 죽지 않을 것이란 전제로 라이터를 건넸기 때문에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또 “박씨가 휘발유를 몸에 끼얹기 전에 담배와 라이터를 젖지 않도록 친구에게 맡긴 사실, 분신하기 전에 유언을 남기지 않은 점 등에 비춰볼 때 박씨가 휘발유를 끼얹은 것은 자살을 위한 결의가 아니라 옛 여자친구를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지난해 9월 여자친구의 옛 남자친구인 박씨가 휘발유를 끼얹은 채로 찾아와 승용차를 가로막으며 “여자친구가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말하자 “죽는 게 그렇게 쉽냐, 그냥 가라”고 타이르다가 박씨가 말을 듣지 않자 “그럼 그냥 죽어라”고 말하며 라이터를 던져줬다.
박씨는 30초 정도 머뭇거리다가 실제로 몸에 불을 붙였고 결국 심각한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다가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그해 12월 사망했다. 이에 따라 정씨는 자살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 있음에도 반성하는 모습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법정 구속됐다.